커피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프랑스 황제이자 군인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군대에 커피를 최초로 도입한 이가 나폴레옹이다. 그는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커피에 매료됐다. 커피를 다른 전략에 활용하기도 했다. 천재적인 전략가였던 나폴레옹은 ‘대륙봉쇄’ 효력이 제대로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데 커피를 이용했다.
1806년 10월 베를린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그해 11월 21일 베를린 칙령을 선포해 대륙을 봉쇄했다. 강대국 프로이센의 항복을 받아낸 후 대서양과 지중해에 이어 발트해마저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칼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보나파르트는 영국 물가표를 끊임없이 면밀히 조사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커피가 금값에 거래된다는 걸 확인하고는 대륙봉쇄령 효과에 만족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을 초래했다. 커피를 마시게 되지 못한 독일인들은 참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나 반나폴레옹 해방전쟁에 참여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 연합군은 라이프치히 전투(1813)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무찔렀다. 우스이 류이치로 도쿄대 명예교수가 쓴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말년에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나폴레옹은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6년간 매 식사 후 빼놓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화산섬인 세인트헬레나 섬은 커피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죽음에 이르기 며칠 전까지도 커피를 찾아 주치의가 할 수 없이 스푼으로 떠 마시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카페 10만 개 시대를 맞이한 한국에 ‘커피 봉쇄령’이 내려진다면 어떨까. 나폴레옹 군대를 각성시키던 커피는 현대 도시인의 필수품이다. 도시의 혈류엔 카페인이 흐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도 남다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지난해 한국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을 408.6잔으로 추정했다. 세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152.7잔)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의 커피 수입액은 2년 연속 1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커피(생두와 원두) 수입액은 11억1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커피 수입액은 2022년 처음 1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2년 연속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커피 수입량은 19만3000t으로 5년 전인 2018년보다 22% 많은 수준이다. 성인 한 명이 하루 약 1.3잔을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국내 카페 수는 약 10만 개에 이른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4만8935개였던 카페 수는 지난해 9만6584개로 두 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고물가 시대를 거치며 싼 가격과 빅 사이즈를 내세운 중저가 커피 신흥 브랜드들이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 카페 수의 급증을 견인했다.
특히 메가커피, 컴포즈커피의 성장 속도가 놀랍다. 2015년 12월 서울 홍대에 1호점을 낸 메가커피는 이듬해 가맹사업을 본격화해 매장 수가 5년 만인 2020년 1000곳, 7년 만인 2022년 2000곳을 넘어섰다. 컴포즈커피도 2014년 부산 경성대에 1호점을 낸 뒤 9년 만에 2350곳의 매장을 내며 메가커피를 맹추격하고 있다. 메가커피와 컴포즈커피는 업계 2, 3위(매장 수 기준)로 올라서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메가커피가 연내 업계 1위인 이디야커피를 추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커피 소비 규모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지만 커피의 미래는 밝지 않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병충해 등 탓에 커피나무가 멸종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가뭄과 사막화로 세계 1위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 커피 경작지의 85%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14년 세계적 커피 기구인 월드커피리서치는 “2050년까지 세계 커피 수요가 두 배 늘어나는 반면 경작지는 절반 이상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올해도 엘니뇨로 인해 브라질과 베트남, 인도 등 주요 산지의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역사 속에서 한때 ‘악마의 음료’ ‘혁명의 음료’로 일컬어지기도 했던 커피. 지금은 흔하디흔한 커피가 귀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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