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인터넷망을 운영하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한 임원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미국 통상정책을 담당하는 미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29일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망 사용료 관련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반(反)경쟁적’이라고 비판한 뒤 1주일쯤 지나서다. 그가 우려한 부분은 미국의 태도가 아니었다. 한국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이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USTR은 2021년부터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망 사용료 이슈에 목소리를 내왔다. 올해는 “한국에선 외국 콘텐츠사업자(CP)에 망 사용료를 지급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이 국회에 다수 발의됐다”며 “일부 한국 ISP는 CP여서 미국 CP가 내는 망 사용료는 한국 경쟁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넷플릭스, 유튜브(구글) 등은 한국에서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3대 ISP의 망을 이용해 시청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한다. 콘텐츠 시청엔 상당한 트래픽이 발생한다. ISP는 해마다 폭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망 증설과 인프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을 쏟는다. 정작 트래픽 유발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구글은 망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넷플릭스도 공식적으로는 국내 ISP에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SK브로드밴드와 법적 송사를 벌이다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다툼을 멈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전체 트래픽 사용량이 가장 많은 기업은 구글(28.6%)이다. 2~5위는 넷플릭스(5.5%) 메타(4.3%) 네이버(1.7%) 카카오(1.1%)다. 트래픽 점유율 1%대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해마다 1000억원이 넘는 망 사용료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구글, 넷플릭스는 “가입자가 통신 요금을 내는데 CP가 또 지급하는 것은 이중 과금”이라며 등을 돌리고 있다.
업계에선 정부와 국회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망 사용료 관련 법안 8건 모두 폐기를 앞두고 있다. 총선 정국을 맞아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망 사용료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더 활성화되기 전에 정리돼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실시간으로 생성한 이미지나 동영상을 스트리밍하는 게 곧 일상이 될 전망이다. 그 많은 트래픽을 국내 ISP가 다 끌어안을 수 있을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실태에 정부와 국회가 좀 더 관심을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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