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가운데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총선 3연패를 당했다. 총선 결과에 따라 변동성이 우려됐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관련주가 이변 없이 장중 흘러내리고 있다.
증권가는 여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합의한 만큼 과한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정부 정책이 이끄는 당분간 상승동력(모멘텀)을 잃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종목별로 들여다보면 흥국화재(-6.11%)와 삼성화재(-4.57%), 삼성생명(-4.69%) 등 보험주와 JB금융지주(-3.56%), KB금융(-3.04%), BNK금융지주(-2.55%) 등 은행주 약세가 두드러졌다.
전국 개표율이 99%를 훌쩍 넘긴 현재 개표 현황을 종합하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는 전체 300개 의석 중 109개를,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175개를 각각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국면이 한 템포 더 이어지게 된 것이다.
총선은 통상 대통령 집권 후 2~3년차에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 집권당 심판론 등으로 여권이 고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증권가 전문가들은 정부가 입법을 전제로 추진하던 정책들에 대해 수정, 재검토는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총선에 예민했던 두 가지 증시 이슈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금투세는 주식과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의 수익 합계가 5000만원 이상일 경우 20%, 3억원을 초과할 경우 25% 세율을 적용한다는 제도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의 증시 부양책 중 하나로 주주환원 노력이 높이 평가된 기업들에 세제 등 여러 혜택을 주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먼저 금투세 폐지는 물 건너갔다고 봤다.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주요 정책 중 하나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밸류업의 경우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사안인 만큼 관련주들을 매수할 기회로 삼는 것도 방법이라고 증권가는 조언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총선 패배로) 단기적으로 정부 정책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한국 주식시장의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양당 간의 합의가 이뤄질수 있는 부분이 상당부분이 있는 만큼, 야권을 설득할 수 있는 '교집합'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총평했다.
세부적으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선 세제 지원은 기대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이 내용으로 이미 여야 간 공감대가 있었던 만큼 큰 틀에서 방향성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 내 '주주의 비례적 이익' 추가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또 M&A·물적분할 시 소액주주 차별 시정, 공적기금 운용시 주주환원정책에 대한 높은 가중치부여 등도 공약했다.
김 연구원은 "ISA 세제 혜택 강화도 여야 모두가 공약해둔 상황이어서 향후 새 국회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밸류업 프로그램 수혜주인 국내 고배당주의 수요 기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미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들이 밸류업 주식형 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등으로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힘을 보탠 만큼 앞으로도 밸류업 관련 재료들은 꾸준히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SA 확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한국 주식시장의 긍정적 요인들을 감안하면 개인 수급이 지속적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고 본다"며 "이미 지난달 이후 정책 모멘텀 약화 가능성이 주가에 선반영된 상황에서 추가로 정부 정책 관련주의 변동성이 나타난다면, 오히려 이는 매수 기회로 봐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 "금융투자소득세의 경우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을 두고 과세를 주장하는 야당이 의석 수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것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과세 폐지 기대감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예정대로 금투세가 도입될 가능성을 점쳤다.
다만 밸류업 제도에 대해선 연속성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연구원은 "세법 및 상법 개정 등이 필요한 자본시장 선진화 과제의 전체적인 추진력은 약화될 수 있겠으나, 그 안의 핵심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연속성은 그대로"라며 "저PBR 업종이 반도체, 바이오처럼 증시 전체를 견인하는 주도 업종으로 격상하기에는 어렵지만, 적어도 5월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 발표 전까지는 주도 테마로서 유효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은행, 자동차, 증권 등 주요 저PBR 업종의 주가는 3월 중 고점 대비 10~20% 이상 급락하면서 밸류에이션 부담을 해소했으며, 기관의 수급도 비어 있는 등 진입 매력이 부각된 시점"이라며 "지금씩 사모아 가는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제정된 법안을 고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금투세 폐지는 부자 감세가 될 수 있다는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면서 "금투세 유예가 연장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반대급부로 IRP 계좌에 대한 수혜 확대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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