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 관련 법안들을 놓고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 우려가 일고 있다. 토큰증권(ST), 분기배당 '선(先)배당 후(後)투자’,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 등 주요 안건이 아직 입법 절차를 거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총선 결과로 21대 국회 회기 내엔 입법이 완료될 가능성이 낮아져서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느 단계에 있었든 관계없이 다음달 30일 자동 폐기된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이번 총선 이후 추진 동력이 확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들이 각각 차기 국회에 입성하지 못하게 돼서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와 분기배당 제도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희곤 의원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고, 토큰증권 도입을 위해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윤창현 의원은 대전 동구을에서 낙선했다.
한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각 법안이 단독 발의 건은 아니지만 특정 의원실에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사실상 개별 의원이 주도한 사안"이라며 "발의한 의원이 낙선하면 아무래도 법안이 (통과할) 힘을 받기가 어렵게 된다"고 했다.
일단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될 전망이다. 21대 국회 정무위 야당 간사인 홍성국 의원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했고, 정무위 간사를 거친 김병욱 의원은 경기 성남시 분당을에서 낙선했다. 정무위 소속 이용우 의원은 더민주 경선에서 탈락해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전례를 고려하면 법안심사 소위나 국회 본회의가 열리더라도 이번 총선에 컷오프·낙선·불출마한 의원들의 참여율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경우엔 의결정족수 미달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가 힘들다.
총선 직후 한동안은 여야 모두 입법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점도 법안 추진엔 걸림돌이다. 국민의힘은 총선 패배 후 '책임론' 등이 불거지면서 입법 관련 여야 간 의견차 조율보다는 내부 정비에 더 무게를 둘 것이란 평가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도 21대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굳이 강행할 이유가 없다.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약 한 달 후 열리는 22대 국회에서 범야권이 180석 안팎 의석을 차지할 전망이라서다.
통상 해산 전 임시국회에서 '무더기 통과'되는 법안은 여야간 이견이 적은 비쟁점 법안이라는 점도 관건이다. 작년 4월 발의된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경우엔 여야간 논쟁을 넘기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신뢰성과 전문성을 갖춘 기관투자자에게 기업공개(IPO) 공모주 물량 일부를 우선 배정하고 일정 기간 보유하도록 하는 제도다. 특정 기관투자자에게만 권리를 부여하는 게 골자다보니 제도가 특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 의견도 제기된 상태다.
투자자가 기업의 분기 배당 방침을 먼저 알고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분기배당 제도 개선 법안도 비슷하다. 금융위와 법무부가 작년 1월 관련 상법 유권해석을 발표해 연간 배당에 대해 '선배당 후투자' 할 수 있도록 한 뒤 같은해 4월 분기배당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른바 '깜깜이 배당'이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중 하나로 꼽혔던 만큼 제도 개선엔 여야간 이견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쟁점이 적다고 해서 바로 '막판 통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국회 관계자는 “비쟁점 법안이 무조건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라며 “그간 쟁점이 없었던 만큼 맘만 먹으면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묵혀졌다는 것은 그만큼 후순위 법안이라는 얘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큰증권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은 작년 11월 검토보고만 한 차례 이뤄졌을 뿐 토론이나 법안심사가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게 대표적인 예다. 분기배당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상정 단계 이후 진척이 없는 채다.
분기 배당에 대해 배당 절차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기업들도 난색이다. 올해부터 자산규모 5000억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배당 절차를 개선했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이같은 내용은 기업이 스스로 가치 제고안을 밝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거래소 공시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행 법에 따르면 분기 배당 기업은 배당받을 주주 명단을 먼저 확정한 뒤 배당금을 정해야 한다. 법을 지키려면 기업지배구조보고서와 거래소 공시에 '아직도 깜깜이 배당 회사임'을 기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국회 회기 내에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각 자본시장 개선 사안 추진은 그만큼 더뎌질 전망이다. 전직 국회 보좌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이번 회기에서 법안이 자동폐기 될 경우 차기 22대 국회에서 다른 의원이 비슷한 내용으로 새 법안을 발의해 아젠다의 불씨를 살릴 수는 있다"며 "다만 이같은 경우엔 관련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다보니 실제 제도 개선 시점은 기존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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