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압승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정제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대통령이 없는 게 낫다”는 거친 표현으로 정권 심판론을 외치던 선거 운동 때와 확연하게 대비된다. 대신 강성 당선인들이 ‘범야권 192석’을 앞세워 대여 투쟁을 예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을 향해 “스스로를 벌하겠다고 얘기하라”(김민석 의원)는 발언도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는 범야권 지도자로서의 무게감을 강조하고 강성 인사 중심으로 여권을 몰아치는 역할 분담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대표는 총선 당일 범야권이 20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예측한 방송 3사의 공동 출구조사 발표에도 비교적 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박수를 쳤을 뿐 웃음기 없이 있다가 자리를 떴다. 이튿날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도 여당을 겨냥한 날선 발언을 하지 않았다. 정치권 전체에 민생 해결에 힘을 모으자고 제안한 정도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집권 여당도 아닌 야당에 175석을 몰아준 데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뒀지만 당시는 이 대표의 지분이 없었다. 친문(친문재인) 운동권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공천부터 선거 운동까지 이 대표가 직접 진두지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표가 주도해 거대 의석을 받았는데 정책적 유능함을 보이지 못하면 대표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총선 상황실장이었던 김민석 의원(서울 영등포을)은 “(윤 대통령이) ‘내가 스스로 벌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 역시 “대통령이 나서지 않고 총리와 참모를 시켜 발언하는 게 어디 있나”라며 “직접 사죄하는 말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으로 ‘이재명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당선된 박균택 당선인(광주 광산갑)은 김건희 특검법을 일성으로 내놨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범야권 192석’을 입법부 장악, 윤 정부 압박을 위한 모든 정치적 행위의 명분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강성파에 야당 전체가 휘둘리는 21대 국회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