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4·10 총선이 끝난 다음날 장병들에게 보내는 지휘 서신을 통해 "말하지 못하는 고뇌만이 가득하다"며 "하루하루 숨쉬기도 벅차다"고 밝혔다.
김 사령관은 지난해 7월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 중 숨진 고(故) 채모 해병대 상병 사건 조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사령관은 전날 내부 전산망에 올린 지휘 서신에서 "해병대가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내외부의 상반된 목소리는 해병대에 부담을 가중시키고만 있다"며 "조직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사령관으로서 안타까움과 아쉬움, 말하지 못하는 고뇌만이 가득하다"고 썼다.
김 사령관은 "더욱 안타까운 것은 현재의 상황이 누가 이기고 지는 시소게임이 아니라 해병대가 무조건 불리하고 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라며 "분명히 축대를 지렛대로 세우고 좌우길이를 같게 해놓은 시소라 할지라도 결국은 한 쪽으로 치우쳐야 하는 결과는 해병대에 큰 아픔과 상처로 남겨질 것이 자명한 현실"이라고 했다.
김 사령관은 "우리는 집단지성으로 냉철하고도 담대하게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미래 역사에 기록될 해병대 도전 극복의 또 다른 역사가 될 것"이라며 "그리고 사령관은 그 어떤 과정과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김 사령관은 "여러 번 밝혔듯이 해병대 사령관은 영광스럽고도 명예롭지만 무겁고도 두려운 직책이다. 특히 요즘은 하늘조차 올려다보기 힘든 현실이 계속되고 있어서 하루하루 숨쉬기도 벅차기만 하다"며 "하지만 선배 해병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쌓아놓은 금자탑을 더욱 소중하게 가꾸어야 하기에, 후배 해병들에게 더 빛난 해병대를 물려주기 위해, 시간시간 숨 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이 비록 사령관에게 희생을 강요하더라도"라고 했다.
김 사령관은 "우리의 소중한 전우가 하늘의 별이 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남겨긴 것은 무엇인가. 고인의 부모님 당부조차 들어드리지 못한 채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원의 결과만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해병대 조직과 구성원에게 아픔과 상처만 있을 뿐이다. 아니, 결과가 나와도 다시 한번 정쟁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해병대 구성원 모두는 이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는 사령관을 포함한 관련 인원이 감당해야 할 몫이며 필요시 해병대사령부에서 대응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한 흔들림에도 거리낌 없이 해병대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각각의 위치와 직책에서 해야 할 것만 제대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사령관은 "해병대라는 깃발은 결코 쉽게 세워지지 않았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무거운 깃발임을 명심하고 하나 되어 굳게 뭉쳐 서로를 지켜내는 소속감과 전우애를 함양해야 한다"며 "비록 현실은 어렵지만,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를 삼아 더욱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라고 했다.
김 사령관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바다는 제아무리 굵은 소낙비가 와도 그 누가 돌을 던져도 큰 파문이 일지 않듯이 자신의 중심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라는 메시지"라며 "사령관이 전우들의 방파제가 되어 태풍의 한 가운데서도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해병대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사령관은 채 상병이 지난해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직후만 해도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문제가 없고, 오히려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월 박정훈 대령의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 2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임성근 사단장 처벌 계획에 대해 격노한 사실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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