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둘째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진다. 코스에서 톱랭커들이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그린재킷'을 두고 펼치는 전쟁, 그리고 코스 밖에서 패트론(마스터스 대회의 갤러리를 지칭하는 말)들이 30cm 짜리 피규어 '놈(gnome)'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입장권과 기념품, 식음료, 중계권 판매 수익금 등을 집계해 마스터스 대회의 총상금 규모를 결정하는 오거스타내셔널은 14일(한국시간) 올해 총상금이 2000만달러(약 277억원)라고 발표했다. 지난해(1800만달러)보다 200만달러 늘어난 규모로, 역대 최고 금액이다. '놈'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펼쳐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사이 간판 상품의 얼굴이 바뀌었다. 흰 수염이 달린 노인 모습의 피규어 '놈(gnome)'이다. 뾰족한 모자를 쓴 작은 남자 모습의 땅속 요정으로, 마당이나 문 앞에 두면 액운을 막아준다는 뜻이 있다. 오거스타내셔널은 2016년부터 매해 다른 복장을 입은 놈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놈은 역대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흰 마스터스 버킷햇에 파란색 가디건, 청록색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클럽을 둘러메 마치 오거스타 내셔널에 라운드를 하러가는 듯한 차림의 놈에 팬들은 열광했다. 매일 일정한 물량이 풀리는데 한시간 안에 동난다. 계산대의 한 직원은 "놈은 이미 오전 8시 전에 다 팔렸다. 놈을 갖고 싶으면 내일 아침 7시에 곧바로 샵으로 달려오라"고 귀띔했다.
오거스타 내셔널 안에서 쇼핑백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높이 30cm, 갖고 다니기에 부담이 적지 않은 부피이지만 놈을 들고 있는 패트런들에게는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꽂힌다.
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놈을 활용한 아이템은 올해 대폭 확대됐다. 캐디복장을 한 놈의 그림이 있는 깃발, 놈 캐릭터를 크게 그려넣은 티셔츠가 올해 처음 나왔는데 대회를 하루 남겨둔 이날 현재 대부분 완판된 상태다.
놈은 오거스타 내셔널의 전략이 집대성한 제품이다. 놈을 차지하기 위한 오픈런이 벌어지고 한시간 안에 준비한 물량이 동나지만 오거스타내셔널은 2016년 이후 49.5달러라는 가격을 유지하면서 매일 일정한 수량을, 1인당 1개만 판매한다.
이는 패트런들을 더욱 안달나게 했다. 오전 7시 패트런 입장이 개시되면 기념품샵 앞에는 순식간에 긴 줄이 만들어진다. 수백미터를 늘어선 줄에서 40여분간 기다려 샵 안에 들어가도 또다시 몇겹으로 또아리튼 대기줄을 지나가야 하지만 기다림을 감내한다. 놈은 이미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이베이에는 올해 놈이 450달러에 나와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마스터스에서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제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몸값 치솟은 결과다.
최상류층의 공간인 오거스타 내셔널이지만 그들이 파는 제품은 비싸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기념품인 모자는 32달러(약 4만5000원). 여간한 골프 브랜드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마스터스 대회장을 벗어나는 순간 가격은 3배 이상 뛰기 시작한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베일에 가리워져있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신비함,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마스터스 대회때만 구입할 수 있다는 ‘희소성’은 골프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차별화 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패트론들은 오거스타 내셔널에 들어서는 순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기념품 샵의 한 직원은 “내가 본 가장 큰 결제금액은 3만달러였다”고 말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2년 대회는 기념품 판매만으로 69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티켓, 식음료 판매 수익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마스터스 위크 기간 방문객 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매일 약 4만명이 대회장을 찾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문객 1명당 기념품 가게에서 평균 246달러를 쓴다는 얘기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희소성과 신비주의를 계속 지켜가겠다는 입장이다. 프레드 리들리 오거스타 내셔널 회장은 대회 개막전 기자회견에서 추가 대회를 개최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마스터스의 신비로움과 마법같은 순간을 존중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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