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나라 컨테이너 선사들의 몸집을 6년 내 두 배 가까이 키우기로 했다. 국제 해운업황의 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반면 해운산업의 미래가 극히 불투명한데 호황 때 번 돈을 몸집 불리기에 써 버리는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해운사들이 해운업황 부진을 극복하고, 친환경 해운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해운산업 경영안정 및 활력 제고 방안'을 15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했다.
현재 12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인 우리나라 컨테이너 해운사들의 선복량을 2030년까지 200만TEU로 늘리는게 핵심이다. 9300만t인 우리나라 해운사들의 해상수송력은 1억4000만t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2년 11월 발표한 3조원 규모의 경영안전판에 3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위기에 취약한 중소형 해운사 지원 규모를 2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현재 18척인 우리나라 해운사들의 친환경선박(5000t 이상)은 2030년 118척으로 늘린다. 이를 위해 해운사들이 친환경 선박을 발주하는데 총 5조5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집약도(CII) 규제 등 갈수록 엄격해지는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2021년 기준 20.2%인 민간투자 비중을 2030년 30%까지 늘린다는 계획도 세웠다.
해양수산부가 해운사 경영 안정책을 내놓은 건 코로나19로 반짝 호황세를 누렸던 해운업황의 사이클이 꺾였다고 판단해서다.
2021년 3972까지 올랐던 국제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작년 말 1006까지 떨어졌다. 2022년 9조9494억원에 달했던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5조8477억원으로 줄었다.
해운업계에서는 국제 해운산업의 시계가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 정부가 몸집을 키우는데만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3강 체제'였던 국제 해운동맹은 올들어 판이 완전히 새로 짜여지고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2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5위 독일 하파그로이드가 '제미나이 협력'이라는 새로운 해운동맹을 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해운동맹은 특정 항로를 움직이는 선사들끼리 모여 항로를 공유하고, 운임 등 영업조건을 합의하는 협력 체제다. 세계 시장 점유율 21.7%(추정치)의 제미나이가 출범하면 HMM이 속한 디얼라이언스 동맹은 점유율 11.4%의 중소 동맹으로 전락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HMM의 선복량이 늘어나야 해운동맹 재편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해운동맹의 판이 어떻게 짜여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몸집만 불렸다가는 선복량을 채우기도 버거울 수 있다고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한 외국계 해운사 관계자는 "해운업황은 장기 부진과 단기 호황이 반복된다"며 "10년 동안 쌓인 적자를 호황기 1년 동안 번 돈으로 만회하는 동시에 다음번 부진을 대비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2020년 45만TEU 규모였던 HMM의 선복량은 현재 80만TEU로 3년여 만에 두 배 늘었다. HMM은 2026년까지 몸집을 120만TEU까지 불릴 계획이다. 이날 HMM은 2030년까지 선복량을 150만TEU까지 늘리겠다고 추가 발표했다.
2016년 파산한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장관 시절이던 2022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2년 내에 파산한 한진해운의 선복량을 회복시키겠다"고 말했다.
10년새 HMM의 몸집이 3배 이상 불어나지만 국제 해운시장을 좌우할 만한 규모는 아니라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프랑스 해운 조사회사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재 HMM의 선복량은 80만TEU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2.7%다. 선복량을 120만TEU로 늘려도 7위 에버그린(167만TEU)조차 따라잡지 못한다.
또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몸집을 불리기 보다 자체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송명달 해양수산부 차관은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HMM의 매각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입장"이라며 "매각 시기와 방법을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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