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전환 비용 부담에 배출규제 후퇴
질소산화물 배출을 더 낮추되 유지 기간도 20년으로 삼는다. 그리고 암모니아, 아산화질소, 메테인 등을 새롭게 규제 물질로 추가한다. 이밖에 전기차의 배터리 수명도 일정 기간 보장되도록 규제한다. 당초 유럽연합이 내세운 유로7 기준 초안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지난해 초안이 발표되자마자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10여개 유럽 나라들이 모여 반대를 외쳤다. 그렇게 하면 자동차 가격이 올라 판매에 어려움이 생기며, 어려움은 곧 기업 위기가 되고, 위기는 다시 파산 등으로 연결돼 해당 국가의 자동차산업 일자리 감소로 연결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일자리 감소는 국가의 세입 축소를 의미해 국가 재정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반발했다. 그래서 유로7 기준을 완화하고 적용 시점도 미뤄 달라고 강력하게 목소리를 냈다.
사실 기업이 반대한 진짜 이유는 전환 비용이다. EV로 전환할 때 필요한 투자 비용이 결국 내연기관 판매로 충당되는 탓이다. 배출 규제 강화로 내연기관 판매가 위축되면 이익 감소를 겪을 수밖에 없고 이 경우 EV 전환 투자가 축소돼 친환경으로 넘어가는 속도 자체가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내연기관의 강력한 저항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고민도 많다. 당장은 기준 완화에 성공했지만 유로7에는 브레이크의 미세먼지 기준이 도입됐고 상용차는 배출기준이 더욱 강화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가 유럽 내에서 판매될 것을 대비해 EV 또는 HEV의 배터리 수명 기준도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5년 또는 10만㎞를 주행하면 배터리 수명의 80%가 남아야 하고 7년 또는 16만㎞를 주행하면 72% 이상이 유지되어야 한다. 모든 적용 시점은 승용차 30개월, 상용차는 48개월 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당연히 환경단체는 반발하지만 유럽연합 입장에선 목소리가 큰 나라의 대부분이 자동차산업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결정을 두고 '내연기관의 승리'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내연기관의 불가피한 생존 저항'으로 보는 게 맞다. 시작 자체가 EV인 신생 완성차기업과 달리 전통적 의미의 자동차회사는 여전히 수익을 내연기관에 기대고 있어서다. 배출 규제 완화로 내연기관 시대를 연장했을지 몰라도 그 사이 전기차에 주력하는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다시 말해 EV 전환 속도가 늦어 경쟁 합류가 뒤처질수록 전환 비용은 오히려 높아지는 구조가 부담이다. 따라서 내연기관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확장됐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내연기관을 축소하거나 EV로 전환하는 것 모두가 수익이 적어 생존을 고민할 때 둘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도 부담이라면 일단 시간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내연기관 수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기차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하려는 전략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들로선 반가운 결정이지만 일종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그러나 기회라는 측면으로 접근했을 때 유로7 기준 완화는 오히려 전기차 전문 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전환 비용이 들지 않는 전기차 전문 기업에겐 경쟁자의 시장 진입 속도가 늦어지는 탓이다.
여기서 관건은 과연 전기차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향후 얼마나 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전문 기관마다 예측치가 모두 달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글로벌에 등록돼 운행되는 전기차를 2억2,600만대로 예측했다. 유럽의 트렌드테클놀러지 및 SNE 등에 따르면 2023년까지 글로벌에 누적 등록된 전기차가 4,040만대 가량인 만큼 여전히 2030년까지 1억8,500만대의 시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를 연간으로 보면 매년 3,000만대의 신차 시장이 형성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의 기준에서 이는 어디까지나 낙관론일 뿐이다. 비관론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기껏해야 연간 1,500만대 정도에 머물 뿐이라고 말한다. 이 경우 2030년까지 추가 등록될 전기차는 1억대 가량이다.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맞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후위기가 자꾸 심각해진다는 사실이다. 각 나라의 일자리 문제에 따른 정치적 계산법에 따라 유로7 기준 완화는 밀렸지만 기후위기는 모두가 겪는 공통의 문제다. 다시 말해 후퇴한 것처럼 유로7 기준은 언제든 다시 강화될 수 있다. 그저 시간만 벌었을 뿐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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