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지방정부 공무원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20대 여성 공무원들은 얼마 전 한국에서 화제가 된 연예인의 삼각관계 사건에 관해 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덕선이 편”이라며 까르르 웃었다. 그들은 시시콜콜한 한국 연예계 소식을 모두 꿰고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헤로인 혜리를 극중 이름인 ‘덕선이’로 부르며 친근감을 드러내는 모습도 놀라웠다.
K팝 스타들은 중국 청소년에게 이미 동경의 대상이다. 최근 만난 한 중국인 학부모는 전교 1등을 하던 고등학생 자녀가 한국 아이돌에 빠져 공부에 손을 놓았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이 학생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 연습생으로 들어간 뒤 미국 아이비리그 진학을 포기하고 ‘K팝 스타’의 꿈을 키우며 매일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이 중국에서 전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처럼 중국 내 한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2016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터진 이후 본격화한 한한령으로 한국의 영화·공연예술·음악은 중국에서 전면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한국의 정당한 방위권인데도 중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트집 잡았다. 이 때문에 게임 영화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의 수출이 막히면서 관련 국내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
문제는 얼어붙은 한·중 관계와 중국의 자국 문화산업 보호 기조다. 그래서 더욱 한한령 해제를 위한 정부의 다층적 노력과 외교력이 절실하다. 중국의 불합리한 제한 조치를 풀도록 하는 것은 한국의 당연한 요구다. 중국 내에서 ‘어둠의 경로’로 소비되면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현 정부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각 부처는 “내 일이 아니다”며 손을 놓고 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한한령 해제를 위한 노력을 지금이라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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