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오르막이 직선으로 펼쳐져 있는 전장 570야드의 파5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파72·7550야드)의 8번홀은 티샷만 잘 지킨다면 타수를 줄일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14일(현지시간) 이 홀의 티잉 구역에 선 스코티 셰플러(28·미국)는 티를 살짝 높게 잡았다. 직전 홀까지 2타를 잃으며 콜린 모리카와(미국)와 루드빅 아베리(스웨덴)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한 상황. 답답한 흐름을 끊을 승부수가 필요했다.
셰플러가 힘껏 휘두른 드라이버를 맞은 공은 319야드를 날아 왼쪽 페어웨이에 안착했고, 두 번째 샷으로 그린 오른쪽 뒤편에 공을 떨어뜨렸다. 핀까지 거리는 21야드. 그림 같은 피치샷으로 공을 핀에서 3m 옆에 보냈고 버디 퍼트를 잡아냈다. 이 버디를 시작으로 셰플러는 무섭게 타수를 줄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두 번째 그린재킷을 걸치게 됐다. ‘셰플러 천하’가 열린 것이다.
세계 랭킹 1위 셰플러는 이날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7개에 보기 3개를 잡아 4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2위 아베리를 4타 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마스터스 우승이자 이번 시즌 세 번째 우승이다. 우승상금은 360만달러(약 50억원)다.
나흘간 셰플러는 견고한 경기력으로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티샷부터 그린 주변 플레이, 퍼팅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오거스타 지역을 덮친 강풍으로 1, 2라운드에 이변이 속출했지만 셰플러의 플레이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강한 바람 탓에 들쭉날쭉한 플레이가 이어진 가운데서도 셰플러는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6개 쓸어 담으며 일찌감치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강풍으로 오버파가 쏟아진 2라운드에서도 이븐파를 치며 타수를 지켰다.
최종 라운드에서도 셰플러의 덜미를 잡은 사람은 없었다. 경기 초반에 모리카와와 아베리, 맥스 호마(미국)가 선두를 넘봤지만 셰플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흐름을 바꾼 뒤로는 더욱 거침이 없었다. 9번홀에서는 완벽한 웨지샷을 성공시키며 탭인 버디를 잡았고, 10번홀에서는 3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넣었다.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셰플러는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13번홀(파5)에서 투온으로 이글을 노렸고 14번홀(파4)에서도 핀을 곧바로 노려 버디를 낚았다. 그는 “이 코스에서는 똑바로, 공격적으로 쳐야 한다”며 “내가 만약 후반에 내내 파만 하는 전략을 세웠다면 18번홀에서 루드빅이 파만 하기를 바라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우승으로 셰플러는 마스터스를 대표하는 또 다른 강자가 됐다. 27세인 셰플러보다 더 어린 나이에 마스터스에서 두 번 우승한 선수는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 그리고 세베 바예스테로스(스페인) 세 명뿐이다. 셰플러는 마스터스에 5번 출전해 2번 우승했다. 마스터스에 3번 출전해 2번 우승한 호턴 스미스(미국)만 셰플러를 앞섰다.
우승이 확정되자 셰플러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가 태어날) 앞으로의 몇 주가 정말 기대돼.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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