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發 '트리플 악재'…韓, 설비투자·수출마저 후퇴하나

입력 2024-04-15 18:36   수정 2024-04-16 01:13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으로 ‘5차 중동전쟁’ 위기가 점화하면서 중동발(發) 오일쇼크 공포가 한국 경제에 드리우고 있다. 여기에 환율과 금리 등 ‘신3고(高)’ 현상까지 겹쳐 한국 경제가 트리플 악재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올 들어 활기를 띠고 있는 수출까지 영향을 받으며 올해 경제 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1%대에 그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장기화 시 유가 100달러 돌파
1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싱가포르 상품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90.23달러로 전날보다 0.2% 하락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도 0.3% 떨어져 85.37달러에 거래됐다.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습에도 당장은 영향이 미미했다는 뜻이다.

관건은 확전 여부다.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뒤 보복 공격 계획을 철회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사태가 진정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보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이스라엘의 대응 수위에 따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국제 원유 주요 운송로인 호르무즈해협만 봉쇄돼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가뿐히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유 의존도와 수출 비중이 현저히 높은 국내 산업 구조 특성상 유가가 오르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경제의 원유 의존도(국내총생산 대비 원유 소비량)는 5.7배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위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해외 경쟁업체와 비교해 국내 기업들의 비용 상승 압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비용 압박이 커지면 올해 계획한 설비투자를 일부 축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올해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액은 225조3000억원으로, 지난해(217조8000억원)보다 3.4% 증가할 전망이다. 다만 이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안팎이던 작년 11월 말 수립한 경영계획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다.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대폭 줄면 고용 축소와 소득 감소에 이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빚게 된다.
정부 낙관적 기대 물 건너가나
배럴당 81달러(두바이유 기준)를 기준으로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수립한 정부의 거시경제 운용 기조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 3.1%(전년 동월 대비)를 정점으로 둔화할 것이라는 기획재정부의 기대부터 어긋날 가능성이 높다. 가중치가 높은 석유류가 급등세를 보이는 데다 올 하반기 전기·가스 공공요금 인상까지 앞두고 있어서다. ‘유가 상승→물가 상승→구매력 감소→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국제 유가는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지만 대처하기 힘든 요인”이라며 “기업의 비용 압박과 함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정부와 한은이 제시한 경제 성장률 전망치(2.1%)도 중동분쟁 향방에 따라 달성이 위태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정부는 올 들어 살아나기 시작한 제조업 수출에 더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침체에 빠진 내수까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문제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초부터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가늠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분쟁 점화로 인하 시기가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당초 하반기에 유력했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강경민/이광식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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