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400억달러(약 55조원)를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두 개를 짓는다. 신축 공장을 하나 추가한 데다 건축비도 늘어나 투자액은 기존 계획(170억달러·약 23조5000억원)의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미국 정부는 투자액의 16%에 해당하는 64억달러(약 8조8500억원) 규모의 현금 보조금을 삼성전자에 주기로 했다. 투자액 대비 현금 보조금 지급 비율로만 보면 인텔, TSMC보다 많다. 업계에선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산업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해 이런 ‘특급 대우’를 결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텔과 TSMC에 이어 삼성전자도 미국 파운드리 투자 계획을 확정한 만큼 엔비디아 등의 인공지능(AI) 칩 생산물량 확보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테일러 공장 신축 현장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그렉 애벗 텍사스주지사 등 미국 정관계 인사와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등이 참석했다. 러몬도 장관은 “테일러 공장이 미국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를 치켜세웠다. 경 사장은 “미국에서 반도체산업의 혁신을 가속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업계에선 글로벌 반도체산업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미국 정부가 높이 쳐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매출 기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를 끌어들임으로써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산학 기술 협력 강화 등 미국이 얻는 혜택이 보조금보다 훨씬 크다고 봤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1996년부터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반도체 공장 두 개를 운영하며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텔, TSMC와 달리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로부터 저금리 대출을 받지 않는 점도 두둑한 현금을 지원받게 된 원인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79조6900억원 규모의 현금·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팹리스들은 세계 파운드리 매출(1174억달러)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큰손’ 고객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TSMC 대만공장에 칩 생산을 맡겼다. 삼성전자가 미국 현지에서 최첨단 파운드리·패키징 서비스를 ‘턴키’ 형태로 제공하면 미국 팹리스의 일정 물량이 삼성전자로 넘어올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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