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위기에 휩싸인 저축은행에 ‘비상벨’이 울리기 직전이다. ‘저축은행 사태’를 겪은 2014년 후 9년 만인 지난해 국내 저축은행업권이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실적이 더 악화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올해 전체 저축은행업권에서 2조원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이 부실 징후가 감지된 10곳 안팎의 저축은행에 사실상 즉각적인 자본 확충 등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다.
금융감독원이 일부 저축은행에 즉각적인 증자를 권고하는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은 대규모 적자에 따라 저축은행의 건전성 지표에 무더기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다. BIS 비율은 위험가중자산(위험대출)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말한다. 적자가 나면 자기자본이 줄어들기 때문에 BIS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분모인 부실채권이 늘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업권은 BIS 비율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위기감을 잠재워왔다. 실제 지난해 적자 전환했는데도 BIS 비율은 저축은행 모두 10%를 웃돌았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순이익, 연체율 모두 낮아진 저축은행이 BIS 비율마저 하락하면 금융 소비자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축은행업권의 상황은 3개월 새 크게 나빠졌다. 자산 1조원 이상 저축은행의 BIS 비율 법정 기준은 8%(자산 1조원 미만은 7%)지만 금감원은 내부적으로 BIS 비율 11%를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총자산 3조원 안팎인 수도권의 A저축은행은 지난해 BIS 비율이 11.2%였다. 지난해 수백억원 규모 적자를 낸 이 저축은행은 올해 1분기에도 적자가 이어져 ‘BIS 비율 11% 붕괴’를 앞두고 있다. 금융지주 계열 B저축은행은 지난해 BIS 비율이 10.8%에 그쳤는데 올해는 이보다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PF 대출 예상 손실은 최대 4조8000억원이다. 올해 추가로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은 최대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올해 저축은행의 전체 적자는 2조2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저축은행 사태가 한창이던 2012년(1조4000억원 적자)보다 큰 적자 규모다.
저축은행 가운데선 대주주가 증자 여력이 부족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주주의 유상증자가 필수적이다. 향후 저축은행 부실이 커지면 금감원은 해당 저축은행에 △경영 개선 권고(BIS 비율 7% 미만) △요구(5% 미만) △명령(2% 미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가장 강도가 센 경영 개선 명령에는 6개월 영업정지 등이 포함된다.
일부 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지분을 팔고 나가길 바라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저축은행 인수합병(M&A) 규제 탓에 실제 매각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7월 비수도권만 최대 4개 영업구역에서 저축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등 일부 규제를 완화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한 건의 매각도 성사되지 않았다. 사모펀드의 인수를 사실상 제한하는 규제 역시 저축은행 M&A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조미현/최한종/서형교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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