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과 저축의 나라’이던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1990년대 거품 붕괴 트라우마와 디플레이션 수렁에서 벗어나면서 안전자산을 고집하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닛케이225지수가 40,000선 근처까지 올라 지난해 일본 가계가 보유한 주식과 채권 가치는 약 27% 상승했다.
불을 붙인 건 일본 정부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국민의 노후 자산을 2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자산소득 배증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1월 파격적인 신NISA 혜택을 도입했다. 비과세 기간을 평생으로 연장했고 연간 납입 한도액을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누적 한도를 600만엔에서 1800만엔까지 3배씩 늘렸다.
투자 바람은 수치로 나타났다. 일본증권업협회에 따르면 NISA 계좌 개설 건수는 2023년 한 달 평균 18만 건이었는데 올 들어 53만 건으로 2.9배 증가했다. 올해 들어 가입한 사람만 2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우리나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자가 출시 8년 만인 지난달에야 누적 기준 500만 명을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열기다.
성장형 투자 계좌에 유입된 금액은 5000억엔에서 1조5000억엔으로 세 배 늘었다. 이 중 91%는 국내주식, 9%는 해외주식에 투자됐다. 해외로 떠나던 돈이 일본 국내 증시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도루 야마노이 다이와자산운용 운용본부장은 오랜 ‘재팬 디스카운트’(일본 증시 할인)의 원인으로 △장기 디플레이션 △기업들의 내재 중심 경영 △개인투자자들의 현금 중시 경향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최근 세 부분 모두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증시 부양책과 기업의 실적 향상이 선순환 구조의 물꼬를 텄다”고 설명했다.
2월 일본을 방문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도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는 본격적인 선순환에 들어섰고 일본 증시는 여전히 상승 여지가 있다”며 특히 “NISA를 통해 들어오는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성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ISA 가입률은 10%대 수준으로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저조하다”며 “ISA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새로운 세제 혜택 방식을 모색하고 청년층을 유인할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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