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중국인 관광객)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일본인을 제치고 내내 입국 외국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주로 찾던 곳은 서울 명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대문이 위치한 광희동이 중국인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예년 같지 않아지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품목이 다양한 동대문으로 중국 젊은 세대들이 몰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광희동 다음으로는 명동(2016명), 서교동(1735명), 방화2동(1406명) 순이었다. 코로나19 사태 후 4년째 1위를 한 신촌동(1349명)은 5위로 밀려났다.
중국인 관광객은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사태와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과 면세점이 같이 위치한 명동을 가장 많이 찾았다. 그러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광희동으로 몰리는 중국인들이 더 많아지면서 동대문 일대가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명동과 광희동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분위기지만 일년 중 절반가량은 광희동이 앞서고 있다.
광희동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비롯해 동대문 패션타운, 화장품 골목, 각종 편집숍 등이 몰려 볼거리가 다양하다. 의류와 액세서리, 화장품 등 다양한 품목을 싼값에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이점이 중국인 관광객들의 이목을 끄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1시께 찾은 동대문 패션타운에서는 쇼핑하러 온 중국인 등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 5명 무리는 관광 안내 가이드에게 가고 싶은 쇼핑타운의 위치를 보여주며 길을 묻기도 했다. 동대문 관광 안내 가이드는 "최근 들어 길을 물어보거나 쇼핑 정보를 알아가려는 중국인들이 많이 늘었다"며 "관광의 목적보다는 쇼핑을 생각하고 한국에 온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동대문 랜드마크 쇼핑몰로 꼽히는 두타몰 곳곳에서도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성복 판매대에서 의류를 사고 나오던 남성 5명 무리 중 한명은 "출장차 한국에 왔는데, 동대문에 품질 좋고 저렴한 옷을 많이 판매한다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제일평화시장 등 의류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에서는 방송 장비를 들고 유튜브 여행 브이로그(V-LOG·일상 기록 콘텐츠)를 촬영하는 중국인 커플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패션타운을 돌며 어떤 제품을 파는지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 사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명소로 소개된 편집숍도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패션잡화와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매장 앞에는 중국식 한자 표기법인 간체자가 적힌 글씨가 가득했다. 매장 내부의 가격과 제품 설명란에도 중국식 표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3층짜리 대형 건물로 된 한 패션 잡화점에서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며 제품을 소개하는 중국인도 포착됐다. 자신을 '인풀루언서'라고 소개한 그는 방송에서 팔로워들을 향해 액세서리류를 하나씩 소개하고 있었다.
인근에서 화장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도매 가게가 모여있는 '동대문 화장품 골목'도 쇼핑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대기업 유통 업체보다 싼 가격에 대량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절대 한 곳만 가지 않는다"면서 최대한 많은 매장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판매되는 제품군은 대부분 비슷한데, 매장마다 가격대가 달라 꼼꼼하게 비교한 뒤 품목별로 더 싸게 사겠다는 것이다.
화장품 가게 내부엔 외국어가 표기된 안내판이 가득했다. 중국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아예 중국인 직원을 둔 경우도 있었다. 한 화장품 도매 가게 사장은 "여기가 더우인, 틱톡, 인스타그램같이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에 입소문이 난 것 같다"며 "제품이 특별하다기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국 경기 부진에 따라 중국 MZ 관광객들은 명동에서도 그렇고 대체로 가성비가 뛰어나거나 저렴한 물건을 대량으로 사는 소비 행태를 보이는 모습"이라면서 "한국 제품들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포장도 화려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해 가성비가 뛰어나다. 예전에는 명품이나 고가 제품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중소기업 제품 등 가성비가 있으면서도 한국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제품군으로 소비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현보·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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