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백화점인 이세탄 백화점과 세계 최대 명품 브랜드 프랑스 루이비통이 40여년 만에 결국 손을 잡았다. 지난 3월 이세탄 도쿄 신주쿠 본점에 루이비통이 입점한 것. 둘은 왜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고, 왜 지금 손을 잡았을까.
1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지난달 ‘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가 운영하는 이세탄 신주쿠 본점에 입점했다. 남성관 2층에 자리 잡은 루이비통은 가방, 의류, 신발 등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이세탄 신주쿠 본점의 연간 매출은 약 3300억엔(약 3조원)으로 일본 최대 규모다. 이런 백화점에 루이비통이 이제서야 입점했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 둘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세탄과 루이비통의 스토리는 40여년 전인 1980년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소비 환경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해외 명품 브랜드가 몰려들던 시기다. 루이비통도 이세탄과 협상을 시작했다. 루이비통은 이세탄에 “1층 화장품 매장을 비워달라”고 요청했지만, 이세탄은 거절했다.
이세탄이 루이비통의 브랜드 파워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이세탄은 특정 브랜드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미 패션에 강한 백화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데다 1등 자리를 내주면서까지 매장 구성의 자율성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명품 브랜드에 굴복하지 않고 아이덴티티를 지키려고 했다.
유력 브랜드는 주변 매장과 차별화를 위해 기둥이나 벽으로 ‘매장 내 부티크’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세탄은 유력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벽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장 내 동선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이세탄이 강력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2000년대 초반, 루이비통은 다시 이세탄에 입점을 타진했다. 그러나 이세탄은 변하지 않았다. 루이비통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루이비통 입점이 다른 브랜드 매출 확대로도 이어지는 순환 효과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루이비통을 보러 온 고객은 루이비통만 산 뒤 바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반면 샤넬과 에르메스는 ‘순환 구매’ 효과가 있다는 게 이세탄의 분석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첫 입점 논의부터 40여년이 흐른 뒤 둘은 손을 잡았다. 이세탄 측은 “시대가 변했다”며 “조건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루이비통의 상품 종류가 다양해져 신주쿠 본점과 친밀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편집 매장’이 강점이었던 이세탄의 집객력이 최근 떨어진 것이 큰 이유라고 보고 있다. 명품 브랜드를 직접 내세우는 것이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관측이다. 루이비통도 한발 양보했다. 다른 백화점 매장과 달리 이세탄 신주쿠 본점에는 따로 벽을 세우지 않았다.
조만간 이세탄에 여성 전용 루이비통 매장도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비 양극화에 따른 고급 브랜드 선호 현상, 새로운 브랜드보다 익숙한 브랜드를 선호하는 흐름 등이 둘을 만나게 했다”며 “그동안 이세탄의 프라이드에 대한 평가는 높았지만, 이제 변심하고 변신했다”고 분석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