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칩도 주문량 줄어"…TSMC·삼성, 투자 속도조절

입력 2024-04-19 18:28   수정 2024-04-20 02:17


지난 몇 개월간 파운드리산업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인공지능(AI) 시장이 열리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AI 반도체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폭발해서다. 세계 1위 TSMC가 지난 1월 “올해 파운드리 시장이 20% 성장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탰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연평균 26%씩 성장한 2020~2022년의 ‘슈퍼 호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랬던 분위기가 석 달 만에 싹 바뀌었다. AI는 여전히 펄펄 날지만 스마트폰, 자동차, PC용 칩 주문이 기대에 못 미쳐서다. 파운드리 기업들은 장비 투자를 줄이고 신규 라인 가동을 늦추면서 중장기 생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TSMC 전망 하향
‘파운드리 업황 둔화’ 우려에 불을 지핀 건 TSMC다. 지난 18일 콘퍼런스콜(실적설명회)에서 ‘약 20%’로 잡은 올해 파운드리 성장률을 ‘10% 중후반’으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 TSMC의 전망치 수정에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이날 주요국 증시에서 반도체주는 동반 급락했다.

그동안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상 ‘레거시(legacy) 파운드리’에 대한 업황 둔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가팔랐던 전기차 성장세가 꺾이면서 레거시 공정을 활용하는 자동차용 칩 주문이 줄어든 탓이다. 레거시 공정 비중이 높은 중국 파운드리 기업들이 수요 감소에 저가 공세를 펴면서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21년 100%에 육박한 DB하이텍, SK키파운드리 같은 국내 레거시 파운드리 기업들의 가동률은 최근 70% 수준으로 낮아졌다.

레거시 파운드리에서 시작한 업황 둔화 움직임은 이제 최첨단 공정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애플 등이 주문하는 최첨단 칩 물량이 줄면서 TSMC의 최첨단 공정(3㎚)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지난해 4분기 15%에서 올 1분기 9%로 떨어졌다. TSMC도 이런 점을 인정한다. AI를 제외한 다른 분야 주문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스마트폰 시장은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PC는 회복 속도가 더디다”며 “일반 서버 시장은 살아나지 않고 자동차 재고는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전쟁 등 세계 경기 불확실성 커져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파운드리업계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란과 이스라엘도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소비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미국의 고금리는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공급 과잉 우려도 커지고 있다. TSMC는 미국과 일본에 최첨단 공장 4개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으며, 삼성전자와 인텔도 미국에 각각 2개 이상의 파운드리 공장을 신규로 짓는다. 일본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도 홋카이도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 향후 5년간 10개 안팎의 파운드리 공장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TSMC,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업체들은 신규 투자를 줄이며 업황 둔화에 대비하고 있다. 파운드리의 필수장비인 네덜란드 ASML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신규 수주액이 지난해 4분기 56억유로에서 올 1분기 6억5600만유로로 88.4% 감소한 데서 확인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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