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로서 마지막 홀을 마무리하는 유소연(34)의 얼굴은 마냥 환하기만 했다. 팬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며 그린에 오른 그는 그린의 경사를 신중하게 살핀 뒤 파 퍼트를 잡아냈다.
'라스트 댄스'를 마친 그는 동료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 이날 같은 조에서 경기를 마친 고진영(29), 패티 나와타나낏(태국)과 환하게 웃으며 포옹했고, 그린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혜진, 유해란, 전인지 등으로부터 꽃다발과 함께 축하를 받았다.
전 세계랭킹 1위 유소연이 16년간의 선수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20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우들런즈의 칼턴 우즈 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셰브론 챔피언십(총상금 790만달러) 2라운드를 끝으로 투어를 떠났다. 유소연은 1, 2라운드에서 각각 5오버파, 2오버파를 쳐 커트탈락했다. 하지만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단 한번도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수가 될지 생각하는데 사로잡혀 그 순간을 즐지기 못했다"고 했다. 유소연은 이날 경기를 마친 뒤 LPGA와의 인터뷰에서 "프로골퍼로서 살아온 동안 몇 안되는 후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승승장구하던 유소연은 코로나19를 계기로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2012년 LPGA투어 진출 이후 2018년까지 상금랭킹 톱10을 지켰던 그였지만, 2019년부터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72위까지 떨어졌고 2023년에는 137위로 추락했다.
미국에서 12년간 이어진 투어활동도 유소연을 지치게 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기간, 유소연은 한국에 9개월간 머물렀다. 그는 "늘 짐을 싸고 몇시에 비행기가 있는지, 렌터카를 어떻게 구할지를 고민하지 않는, 안정적인 삶을 오랜만에 느꼈다"며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커피를 마시러 가는 순간의 행복함을 투어활동 중에는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전설적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유소연 역시 후배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준 선수였다. 세계 최정상에서 내려온 뒤에도 꾸준히 투어 활동을 이어오며 후배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는 "골퍼로서의 목표로 명예의 전당이나 세계랭킹 1위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한 인간으로서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었고, 여자골프와 골프발전을 위해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이날 한국 선수들 외에도 아자하라 무뇨스(스페인), 리디아 고(뉴질랜드), 아타야 티띠꾼(태국) 등이 유소연의 은퇴를 축하했다. 유소연은 "은퇴를 발표한 이후 동료들이 사랑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줬고, 후배 선수들이 '영감을 주는 선수'라고 말해줬다"며 "처음으로 제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느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유소연은 이제 인생 2막에 나선다. 8세때 골프를 시작했고 16년간 골퍼로 살아온 그이기에, 제2의 인생 역시 골프와 함께할 계획이다. 그는 "골프가 인생의 전부였고 골프가 없는 나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주니어 선수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 또 골프장을 설계할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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