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5차 재정계산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수익률을 4.5%로 가정했는데, 이를 1988~2023년 기금 평균수익률 5.92%로 가정하면 기금 소진 시점이 2070년도로 넘어간다”
연금개혁 방향 결정을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가 13일부터 2주에 걸쳐 진행 중인 숙의토론회에 참여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시민대표단에게 한 설명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더 받고 더 내는’안의 경우 기금 고갈 시점이 2061년으로 현행(2055년)에 비해 6년 늦춰지는데 그친다는 시민 대표단에 지적에 대해 현재까지의 기금운용수익률이 미래 수십년 뒤에도 유지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제시한 수치다.
남 교수 등 소득보장파 뿐 아니라 재정안정파 전문가들도 기금운용수익률과 관련해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재정안정파가 시민대표단에 제시한 보험료율만 12%로 인상하는 ‘더 내고 그대로 받는’안의 경우 기금고갈 시점은 2062년이다. 석재인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금운용수익율이 5.92%를 이어간다면 고갈 시점은 2076년으로 늦춰진다”며 “여기에 중장기적으로 보험료율을 15%로 높이고 연금 지급 개시연령도 늦춘다면 2100년 이후에도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향성은 정 반대지만 기금 고갈을 결국 막을 순 없는 두 안을 두고 양측 모두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로 기금운용수익률 제고를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투자 업계에선 이런 가정은 국민연금이 처한 투자 현실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수행한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기금운용수익을 빼고 보험료 수입과 급여 지출만을 감안한 보험료수지는 불과 3년 후인 2027년 적자로 전환된다. 그동안 매년 20조~30조원씩 늘어나는 기금으로 원하는 자산을 순매수하면 됐던 국민연금이 이제는 일부 자산의 처분은 전제로 방어적 운용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2020년부터 이 시점을 유의미하게 바라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을 30%대에서 50%대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해외투자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의 생애주기를 보험료 수지가 흑자인 ‘기금 성장기’, 보험료 수지가 적자지만 투자수익 덕에 기금 전체 규모는 늘어나는 ‘기금 전환기’, 총수지가 적자전환하는 ‘기금 감소기’로 구분했다.
2027년까지로 예측되는 기금 성장기엔 해외주식,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 비중을 최대한 늘려 수익을 높이는 것이 국민연금의 전략이다. 기금 전환기엔 위험자산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 투자 수익 중 일부를 연금 지급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료 수지 적자 규모는 2035년께 30조원대로 늘어나고 2040년엔 73조원, 2050년엔 195조원으로 해가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한다.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기금운용수익률을 감안해도 적자 전환이 되는 2041년이 되면 총수지가 적자가 되는 기금 감소기에 접어든다. 2040년 1755조원에 달했던 국민연금이 불과 15년 만에 완전히 고갈된다. 국민연금이 매년 100조원이 넘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보유 자산을 ‘순매도’하는 것이다.
향후 70년 간 4.5%로 설정된 국민연금의 장기 평균 기금운용수익률은 이 같은 국민연금의 생애주기를 반영한 수치다. 국내 주식시장 시총의 7%, 300여개 상장사의 대주주인 자본시장의 ‘고래’ 국민연금의 대량 매도가 본격화할 경우 국내 주식 시장은 침체에 빠질 것이란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고래 투자자가 팔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 명백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 투자에 나설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채권 역시 국민연금의 매도는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비례 관계)으로 이어져 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커진다. 막대한 해외 자산의 매도는 환율 급락(원화가치 상승)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 우리 국민의 구매력이 상승하긴 하지만, 반대로 해외 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다. 국민연금이 전체 자산의 절반 가량을 투자 중인 국내 시장의 수익률이 국민연금이 순매수하던 시절과 같을 순 없다는 것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순매도기를 감안하면 4.5%란 장기평균수익률은 오히려 후한 수준”이라며 “자유무역과 기술 발전으로 선진국과 개도국이 함께 고속 성장을 구가한 1988년부터 최근까지의 수익률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국민연금이 대량 매도에 나설 필요가 없도록 보험료율을 높이는 등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조치란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1인당 운용자산 규모가 3조원 수준으로 5000억원 이하인 캐나다연금(CPPIB)의 6배에 달할 정도로 부족한 운용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운용조직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노동계, 경영계, 정부 등 외부의 입김에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숙의토론회를 지켜본 한 국내 연기금 CIO 출신 인사는 "수익률을 높이고 싶다면 장기 수익률이 9~10%에 달하는 CPPIB 같은 연기금은 어떻게 하고 있고 국민연금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전혀 없이 지금까지 수익률에 대한 자화자찬만 있었다"며 "기금운용수익률을 부족한 모수개혁안을 변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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