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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어니봇’ 사용자가 출시 13개월 만에 2억 명을 넘었습니다.”
지난 16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바이두 본사에서 열린 AI 개발자 콘퍼런스.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 겸 회장이 입을 떼자 7000명 넘는 ‘중국 AI 전사’들이 박수와 함성을 쏟아냈다. ‘중국만의 힘으로 미국 실리콘밸리를 턱밑까지 따라잡았다’는 자신감에 행사장은 마치 콘서트홀에 온 것처럼 시끌벅적했다. 25개 언어로 나온 오픈AI의 챗GPT가 사용자 2억 명을 넘긴 시점은 지난해 2월.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AI의 시차가 1년으로 좁혀진 셈이다.
중국의 최첨단 기술을 뜻하는 ‘레드 테크’ 공습이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를 자체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아 산·학·연이 똘똘 뭉쳐 기술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다.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은 이미 ‘중국 천하’가 됐고, AI·반도체·로봇·자율주행·수소 등 다른 첨단산업에서도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올라섰다.
레드 테크의 실상은 몇몇 수치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시 전체가 ‘자율주행 실험실’인 우한은 로보택시 등이 마음껏 운행할 수 있는 도로 길이만 3378㎞에 달한다. 서울~부산을 여덟 차례 오갈 수 있는 거리다. 구글보다 10년 늦은 2016년 자율주행 분야에 뛰어든 바이두가 단시일에 1억㎞에 달하는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여기에 화웨이, 샤오미 등이 확보한 데이터를 합치면 ‘테슬라+구글’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산업계의 평가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선전에서만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1위 업체인 유비테크를 비롯해 3900개가 넘는 로봇 기업이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중국이 남의 제품을 베낀다는 건 옛말”이라며 “중국은 자신들이 구축한 가장 효율적인 생태계를 통해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장비 제재에서 출발한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테크 독립’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선두업체인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 합계는 2496억위안(약 47조5000억원)으로 한국의 ‘AI 빅3’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네이버의 합산 투자액(34조원)을 압도한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SMIC는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5나노미터(㎚·1㎚=10억분의 1m)급 칩 양산을 준비 중이고, BYD는 유럽과 신흥국을 공략해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으로 올라섰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의 점유율(36.8%)은 2~4위를 합친 것보다 많은 절대 지존이 됐다.
차석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은 “중국이 강한 건 공급 과잉,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로 10년 이상 보고 꾸준히 투자한다는 점”이라며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중국이 14억 인구를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벌이는지 전 세계가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전=신정은/박동휘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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