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높은 농산물 가격에 기후변화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치솟는 물가에 대해 말하며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통제 불가능한 기후변화 탓에 경제 상황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반면 변동성을 먹고사는 투자자들은 ‘기후 인플레이션’을 기회로 삼고 있다. 커피, 카카오, 올리브유 등 일제히 가격이 치솟자 관련 투자상품에 발 빠르게 뭉칫돈을 밀어넣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난도가 높은 투자를 위해서는 시장 상황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후 인플레이션 활용법을 살펴봤다.
공급 차질에 치솟은 가격
지난 4월 21일 뉴욕거래소에 따르면 인도분 코코아 선물가격은 톤당 1만1461달러까지 급등했다. 지난 10년간 2000~3000달러 수준이던 가격이 근래 급등한 모습이다. 코코아 가격이 오른 것은 코코아 생산량 1·2위 지역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지역의 이상기후로 가뭄이 심하게 들어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KB증권에 따르면, 국제 코코아 기구(ICCO)는 이 같은 공급 차질로 2024년 코코아 공급량이 수요 대비 37만 톤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작년 연말에는 인도, 태국 등 설탕 주산지가 엘니뇨의 영향을 받아 슈거플레이션이 발생했다”며 “코코아 같은 환금작물 (換金作物)뿐 아니라 옥수수, 밀, 쌀 등 주식 작물(곡물)의 생산량도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설탕 역시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2위와 3위 수출국인 인도와 태국에서 엘니뇨 영향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설탕 생산이 급감했다. 인도의 생산량 전망치 상향 조정과 태국의 수확 속도 개선 덕분에 설탕 가격은 지난해 11월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예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 투자자들은 달콤한 수익을 맛봤다. 실제 농산물 선물에 투자하는 인베스코 DB 애그리컬처 상장지수펀드(ETF)는 최근 1년 새 약 32% 급등했다. 코코아를 비롯해 커피, 대두, 설탕, 옥수수 등 주요 10가지 농산물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관련 농산물에 투자하는 상품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ETF로 꼽힌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등락폭이 크지 않던 코코아가 급등하면서 이를 포함한 투자상품 가격이 크게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측 불가 기후, 투자에 주의 필요
통제 불가능한 기후변화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다 보니 투자 난도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나서 조절하는 금리와 달리 기후 인플레이션에 따라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관련 시세를 따라가기 쉽지 않아서다.
실제 오름세를 보이던 소맥, 옥수수의 경우 가격이 안정을 찾으면서 관련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 특히 옥수수의 경우 지난 1~3월 가격이 전년 대비 33.7% 하락했다. 2022년에 비해선 37.0% 떨어졌다. 소맥 역시 지난 1~3월 대비 전년 동기 대비 가격이 10.5%, 2022년과 비교해선 25.7% 급락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 주가는 1년 새 약 20% 추락했다. 밀, 옥수수 등을 담고 있는 상품이다. ETF에 기초가 되는 가격이 하락하면서 주가가 하락한 모습이다.
농산물 펀드 수익률도 시원치 않다. 펀드 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4월 22일 기준 총 7개의 농산물 펀드 수익률은 연초 대비 8.40% 하락했다. 1년 수익률과 2년 수익률 역시 각각 -15.05%, -27.74%로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KODEX콩선물 ETF의 경우 올해 15%가량 손실을 내는 등 가장 부진했다. 옥수수, 콩, 밀 등 3대 농산물 선물가격에 투자하는 삼성KODEX 3대농산물 ETF 역시 올해 13.25% 떨어졌다.
다만 곡물 대신 농산물가격은 당분간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엘니뇨의 반대 현상인 라니냐가 소멸된 후 곡물 시장 중심의 농산물 섹터는 약세를 이어왔지만, 라니냐에 이은 엘니뇨로 관련 시장은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적으로 엘니뇨와 라니냐는 농산물 파종과 작황, 수확 과정에 차질을 빚게 하는 대표적 기상이변으로 엘니뇨는 동태평양 연안(북미와 남미)의 강수량을 확대하는 반면 서태평양(동남아, 호주, 인도 등)에서는 가뭄을 초래한다”며 “반대로 라니냐 기후에서는 동태평양 연안에서 경작되는 농산물에서 가뭄에 따른 생산 피해가 발생하기에 주요 곡물 가격도 2020년부터 3년 연속 지속된 라니냐 기후에서 강세가 시현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1년간 엘니뇨 여파 속에서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약 80%를 차지하는 전 세계 옥수수, 대두(콩) 등 곡물 생산은 자유로웠다”면서도 “반면 인도의 원당 수출 규제와 베트남 로부스타 커피 생산 급감, 서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된 CSSD(Cocoa Swollen Shoot Disease) 등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높은 난도의 기후 인플레이션 투자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자칫 사이클을 잘 못 타게 되면 수익률을 회복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어서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상이변에 따른 레짐 체인지에 앞서 농산물 하위 섹터를 통한 롱쇼트, 전략을 권고한다”며 “기상이변의 변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신중한 선별 작업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황병진 연구원 역시 “글로벌 기후 전망상 엘니뇨 발생 확률이 후퇴하는 2분기부터는 투자자 주도의 대량 차익 실현 매물 출회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원 한국경제신문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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