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새 아파트 입주민들이 혹파리 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붙박이장, 수납장 등 ‘옵션’으로 제공되는 가구 속에 숨어 살던 혹파리가 날씨가 따뜻해지자 밖으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입주민들이 “건설사가 가구에 부실 자재를 쓴 게 문제”라며 불만을 제기하면서 시공사와의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19일 파주 운정신도시 J아파트 입주자대책회의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 창문틀과 화장대 서랍, 붙박이장 등에서 이달 초부터 혹파리 알과 사체가 다수 발견되기 시작했다. 한두 세대에서 발견되던 혹파리는 보름 새 수십 세대로 번졌다. 입주민 B씨는 “합판으로 만들어진 가구에서 어김없이 혹파리가 나온다”며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구 내부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에 불안이 더 크다”고 했다.
국내 아파트촌에서 발견되는 혹파리는 파리목 혹파리와의 나무곰팡이혹파리(Asynapta groverae)다. 나무에 살며 곰팡이와 버섯 등 ‘균’을 먹고 산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5~6월 알을 깨고 밖에 나온다.
주 서식처는 중국과 인도로 한국 식생에선 찾아보기 힘든 혹파리 떼가 올 들어 유독 새 아파트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의 신축 H아파트에서도 지난달 중순부터 혹파리 떼가 나타나 거의 모든 세대로 번졌다. 최근 H아파트 방제를 담당한 C방제업체 대표는 “경기 화성시, 강원 화천군 등 전국 10여 곳의 아파트 단지에서 혹파리 관련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혹파리 떼는 지난해 5월 인천 송도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대량으로 나타났다. 총 1820세대 중 절반 이상에서 혹파리가 발견됐다. 2008년 송도에서 혹파리가 무더기로 발견된 후 15년 만의 집단 창궐이었다.
혹파리떼 출현은 입주민들과 건설사 간 마찰 요인이 되기도 한다. 건설사가 하자 보수 차원에서 방제해주겠다고 했음에도 주민들은 문제가 있는 가구의 전면 교체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입주민은 기다리다 못해 자비로 붙박이 가구를 교체하고 있다. 전·월세 계약을 맺은 임대인과 세입자가 혹파리를 두고 계약 취소 갈등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혹파리가 정확히 어떤 경로로 유입됐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멸도 쉽지 않다. 살충 성분이 가구 내부까지 침투하긴 쉽지 않기에 ‘가구 교체’가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게 주민들의 목소리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혹파리 떼 창궐이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제 전문가는 “건설사에서 붙박이 가구 품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혹파리가 번식도 하고 있다”며 “기온이 더 올라가는 5~6월엔 신축 아파트의 혹파리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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