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라는 세월은 길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불혹(不惑)의 나이에 도달하는 동안 인연을 쌓아온 갤러리와 작가들이 있다. 이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동행: 가나아트와 함께한 40년’ 전시에서다.
가나아트와 40년간 동행한 작가 23명이 참여한 전시로 김구림 윤명로 한진섭 등 ‘국가대표 작가’들의 작품 70점이 나왔다. 가나아트는 뜻깊은 전시를 위해 전관을 할애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주요 작가의 최신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다. 특유의 체커보드 패턴을 더 적극적으로 캔버스에 그려낸 유선태의 최신 작품 ‘말과 글-하늘정원’이 첫선을 보인다. 꽃이 피고 새가 날아다니는 화사한 하늘이 화면 가득 펼쳐진 이왈종의 신작도 나왔다.
1층에 들어서면 한국 추상회화의 거목으로 불리는 윤명로가 1970년대 후반 그린 대표작 ‘균열’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마치 빗자루로 캔버스를 쓸어내듯 붓질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바람이나 냄새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상적으로 그렸다. 동양의 서예를 서양 추상미술과 결합한 작가 오수환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그는 단색 바탕에 몇 획의 붓질을 한 작품을 주로 내놓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대화’도 청록색 바탕에 노란 획을 그어 완성했다.
한국 대표 실험미술 선구자이자 가나아트 대표 작가인 김구림의 작품도 바로 옆에 걸렸다. 이번 전시에 나온 ‘음양 시리즈’는 디지털 이미지와 아날로그 회화를 한 캔버스에 모은 작품이다. 가운데 누운 인물은 디지털 이미지로, 주변 배경은 모두 붓으로 그렸다.
‘자연의 시간’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 안종대의 작품들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그는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체들을 자연환경에 그대로 펼쳐놓는 작업 방식을 쓰는 작가로 잘 알려졌다. 한 물체가 자연스러운 풍화 산화 등의 과정을 거치며 겪는 변화의 흔적을 작품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종이로 이뤄졌다. 물감과 습기를 머금은 종이를 오랜 시간 자연에 노출시켜 산화 과정을 겪게 했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 중 가장 젊은 얼굴인 최울가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던 일상을 기하학적 기호로 표현한 작업을 선보인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작은 도트 무늬가 특징인 작품이다. 언뜻 스티커를 캔버스에 붙여 놓은 듯 보이지만, 모든 무늬를 전부 붓과 물감으로 그렸다는 점이 재미있다.
2층 공간엔 큰 돌덩어리 같은 대형 설치작이 놓였다. 허명옥의 설치 작품인데, 큰 작업물 전체에 모두 옻칠을 해 마감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 기법인 옻칠을 회화, 영상, 공예 등 실용미술과 현대미술로 풀어냈다.
쉽게 만나보기 힘든 국내 대표 작가들의 작업을 한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전시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가나아트의 40년 역사를 함께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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