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0년간 머신러닝과 AI를 키워드로 삼아 시장에 나선 창업팀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다. 루닛, 데이블, 리벨리온, 셀렉트스타 등 유망 AI 기업을 초기에 발굴해 투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AI 의료 기업 루닛에 모두가 갸우뚱할 때 유일하게 시드 투자자로 참여한 뒤 여섯 번 연속 투자해 상장까지 이끌었다. 차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거론되는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법인이 설립되기도 전에 직접 발굴했다. 미래 기술을 미리 고민하고 한발 앞서 베팅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카카오벤처스의 새로운 리더가 됐다. 2012년 창립 멤버로 합류한 지 12년 만에 대표에 선임되면서다. 딥테크 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면서 미래 기술에 예리한 안목을 갖췄다는 게 경쟁력으로 꼽혔다. 카카오의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VC)인 카카오벤처스는 초기 단계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회사다. 사후 관리가 ‘빵빵’해 스타트업 사이에선 가장 투자받고 싶은 VC로 꼽힌다.
김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 영역 투자 방향에 대해 “무주공산의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웹 서비스를 모바일로 전환해 먼저 깃발을 꽂는 방식의 사업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은 특정 영역을 먼저 점령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사회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살펴 새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하는 단계”라며 “한국 인구구조의 변화와 외국인 유입 추세 등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AI와 로봇 분야 투자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AI를 사람에 비유했다. 아이가 태어나 인지 기능을 얻고 이미지와 언어를 배운 뒤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현재 AI도 로봇과 연동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AI 로봇이 아직 뛰어다니면서 운동할 정도는 아니지만, 손짓·발짓을 하면서 기능을 갖춰가는 단계”라며 “지금은 걸음마를 잘 떼는 회사를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서빙 로봇에 챗GPT만 접목해도 고객이 느끼는 제품의 수준이 확 달라진다”며 “AI 기술을 입혀 시장을 혁신하는 기업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벤처스는 지난해 스타트업 12곳에 투자를 집행했다. 2014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얼어붙은 벤처 투자 시장 분위기가 반영됐다. 김 대표는 “작년엔 신규 창업팀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투자도 줄었다”며 “올해는 정량적, 정성적인 방식을 도입해 더 깊이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창업팀을 발굴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창업자들이 당장 적은 돈을 벌려고 시야를 좁히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벤처 혹한기로 불리는 지금이 창업자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창업팀 수가 줄어 오히려 초기 단계에선 투자 유치 경쟁이 완화되는 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개발자 품귀 현상도 일부 해소됐다. 김 대표는 “어려운 시기에 과감하게 창업을 택한다면 꼭 풀어야 하는 큰 문제를 가져오는 게 맞다”며 “수익모델을 찔끔 고쳐서 짧게 돈 버는 것보다 길게, 또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글=고은이 기자/사진=이솔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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