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독점규제 장벽…합병 대신 합작 늘린다

입력 2024-04-23 18:10   수정 2024-04-24 02:05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인수합병(M&A) 대신 조인트벤처(JV) 및 파트너십 체결을 통한 사업 영토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간 합작 건수가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의 독점 규제 장벽이 높아지면서 과거보다 M&A에 어려움을 겪게 된 기업들이 대안을 찾은 결과다.

워너브러더스와 손잡은 디즈니
22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들어 글로벌 대기업들이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방식으로 M&A 대신 협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독일 컨설팅업체 안쿠라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M&A 시장은 침체했지만, JV 및 파트너십 건수는 1년 전보다 40% 증가했다. IT업계 등 핵심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분야일수록 합작 건수가 많았다.

디즈니는 지난 2월 자회사 ESPN네트워크 및 경쟁사인 폭스미디어그룹,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와 공동으로 스포츠 전용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출시하기로 합의했다. 각 기업이 신규 플랫폼사의 지분을 3분의 1씩 소유한다. 같은 달 디즈니는 인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인도 최대 재벌 무케시 암바니가 이끄는 릴라이언스그룹과 85억달러 규모의 OTT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전기차(EV) 분야에서도 협력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과 손잡고 35억달러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세계 4위 완성차업체인 스텔란티스도 지난해 10월 중국 전기차업체 리프모터의 지분 20%를 인수하며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지난달에는 닛산이 혼다와 전기차 개발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매서워진 반독점 규제

글로벌 기업들이 M&A 대신 합작을 선택하는 이유는 높아진 독점 규제 장벽 탓에 M&A가 과거보다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M&A를 추진할 경우 유럽연합(EU), 영국, 미국, 일본 등의 반독점 규제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관료주의 탓에 승인 과정이 지연되거나 특정 국가 경쟁당국과 법적 분쟁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잦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2년 1월 글로벌 게임업체 블리자드 액티비전을 687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1개월이 지난 작년 10월에야 영국 경쟁시장국(CMA)에서 최종 승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독점 규제 때문에 액티비전의 게임 판권을 경쟁사인 유비소프트, 소니 등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각국 경쟁당국은 특히 인공지능(AI) 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 1월 MS, 알파벳(구글 모회사) 등 빅테크가 벌인 AI 투자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럽 및 영국 경쟁당국도 AI 분야 독점 문제를 주시하는 움직임이다. 이 때문에 빅테크들은 AI 분야에서 M&A 대신 합작 형태의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MS는 지난 16일 지분 투자 형식으로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AI 스타트업인 G42와 손잡았다. MS는 G42의 지분을 15억달러(약 2조원)에 매입하며 이사회에 합류했다. 지난달 아마존은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에 40억달러를 투자했고, 알파벳도 앤스로픽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세 곳 모두 경쟁당국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협업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협업도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쟁당국이 파트너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는 미국 법무부로부터 독점방지법 위반으로 제소되며 양사의 항공 동맹을 해지했다. 디즈니의 새로운 스포츠 OTT 서비스도 공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협력은 인수보다 수월하게 규제당국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난관은 남아 있다”고 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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