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손실 중인데"…'하루 천하'로 끝난 테슬라 훈풍

입력 2024-04-25 09:55   수정 2024-04-25 10:26


테슬라발(發) 훈풍은 하루로 끝났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성장전략을 구체화하면서 눌려있던 국내 2차전지 관련 종목들 주가도 간만에 시원스런 상승세를 보여줬지만, 하루만에 차익실현 매물이 나왔다.

25일 오전 9시39분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전일 대비 6000원(1.56%) 내린 37만9000원에, 삼성SDI는 1000원(0.24%) 하락한 42만1000원에, 엘앤에프는 2200원(1.38%) 빠진 15만7800원에, 에코프로비엠은 6000원(2.44%) 낮은 23만9500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외국인이 삼성SDI를 제외한 2차전지 관련 종목들을 대거 팔고 있다. 9시30분 기준 LG화학에 대한 순매도 규모는 69억원(2위), 에코프로비엠은 33억원(8위), LG에너지솔루션은 23억원(14위)이다.

전일 큰 폭으로 오른 데 따른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는 영향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LG에너지솔루션(4.05%), 삼성SDI(3.69%), 엘앤에프(5.89%), 에코프로비엠(5.14%) 등은 3% 이상의 강세를 나타냈다.
머스크도 ‘캐즘’ 인정…수요 부진 우려에 반짝 상승에 그쳐
테슬라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훈풍이 한국 주식시장에도 전해졌지만, 효과는 하루에 그쳤다. 당장 실적을 좌우하는 전기차 수요 성장이 꺾인 탓이다. 실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도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의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에 대해 인정했다. 그는 “많은 업체들이 순수전기차(EV) 투자를 미루고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채택했다”며 “이런 현상은 향후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2차전지 업체들도 전기차 수요 성장 둔화로 인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발표한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실적은 예상대로 부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573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75.2%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영업이익률은 2.6%다. 매출은 6조1287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9.9% 감소했다. 순이익은 62.3% 줄어든 2121억원이다.

영업이익이 흑자인 이유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1889억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AMPC를 제외하면 1분기 영업이익은 316억원의 적자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출하량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유럽 수요 부진과 테슬라 판매량 부진의 영향이 크다”고 평가했다.

테슬라와의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도 최근 한달 동안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2.38%와 11.76% 하향됐다. 한 증권사 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는 “2차전지 종목들의 주가가 많이 하락했기 때문에 2분기말이나 3분기께 상당한 수익을 챙길 기회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론 2차전지 산업의 이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만한 이벤트가 생기지 않으면 주도주로 올라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태슬라의 배터리 내재화 과정서 수혜 기대되지만…결국 수익성↓”
다만 테슬라의 로드맵에서 국내 2차전지 섹터가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진행된 테슬라의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환호한 이야기는 모델2의 양산시기를 앞당기겠다는 발표였다. 기존 내년 6월에서 올해 연말이나 내년초로 앞당겨졌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테슬라가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로보택시)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모델2 양산을 미루거나 포기할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실적 성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외에도 컨퍼런스콜에서는 △1분기에 4680(지름 46mm에 길이 80mm) 배터리 생산능력 20%가량 확대 △사이버트럭의 초과 수요 상황 △완성차업체와의 완전자율주행 프로그램(FSD) 공급 협의 △옵티머스 로봇과 로보택시의 출시 계획 등이 발표됐다. 조희승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보다 더 구체화된 기술 진행 상황 공유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당장은 국내 2차전지 업계가 테슬라의 4680전지 내재화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당장 지난 22일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과 테슬라가 6조원 규모의 전극 공급 계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내년 전기차 생산 가능 규모나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가이던스(자체 전망치)를 감안하면 4680전지의 100% 내재화는 불가능하다”며 “기존 공급자들의 조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작년부터 올해까지 테슬라와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들의 공급 계약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어 향후 테슬라의 2차전지 양산 규모에 맞춘 국내 소재기업들과의 협력 사례도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2차전지 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회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4680전지 생산능력 확장은 사어버트럭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라며 “결국 셀 제조업체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비용 지불을 줄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테슬라가 4680전지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뒤에는 셀 제조업체들이 가져가는 이익을 줄이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테슬라 ELS 미상환잔액 1조 넘어…고점 투자자는 아직 손실구간
개인투자자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종목토론방의 주주들 반응은 대체로 테슬라보다 반등 강도가 약한 데 대해 아쉬움이나 반짝 상승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커뮤니티에는 매도를 인증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그들은 “다시 기회 주면 매수하겠다”, “오르면 바로바로 팔아야 한다”, “불안하다” 등의 말을 덧붙였다. 또 다른 편의 주주들은 “빠질 때는 테슬라의 두배, 이벤트로 오를 때는 테슬라의 반값”, “찔끔찔끔 움직이지 말고 쭉 상승하면 안 되겠냐”고 토로했다.

테슬라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주가가 작년 7월 고점을 찍은 이후 줄곧 내리막을 탔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집계된 작년 7월 이후 테슬라 ELS의 미상환 잔액은 1조1300억원이다. 주가가 하락한 탓에 조기상환되지 못하고 미상환 잔액이 쌓인 것이다.

조기상환을 못 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손실 발생이다. 대체로 기초자산 가격이 발행 당시보다 30~50% 낮은 가격을 원금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녹인(Knock-in)’ 가격으로 설정한다. 간밤 테슬라 종가(162.13달러)는 고점(293.34달러) 대비 44.73% 하락한 수준이다. 고점 부근에서 최초 가격 대비 30% 하락한 가격으로 녹인이 설정된 ELS에 가입한 투자자는 여전히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손실을 피하려면 테슬라 주가가 ELS 발행 당시 가격을 회복해야 한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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