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씨 사례는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가 5년 전 출시한 ‘모임통장’이 활용된 경우다. 중고거래 사기가 늘면서 더치트 등에서 전화·계좌번호를 기반으로 상대의 사기 이력을 검색할 수 있게 되자 추적을 피하기 위해 명의를 도용한 모임통장을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고거래 사기범들은 모임통장의 경우 한 번 신분증을 인증하면 새 계좌를 계속 개설할 수 있고 해지한 뒤 그 다음날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허점을 노렸다. 중고거래 사기범 일당은 지난 12일까지 중고장터에 김씨 명의의 계좌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아직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기범들을 특정하지 못했다.
이런 명의도용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다. ‘안충X, 김경X, 설하X’ 등 중고거래 시 조심해야 할 계좌주 이름 수십 개가 인터넷 카페에 공유될 정도다. 이들도 모임통장을 통한 대포통장 피해자로 추정된다.
시중은행에선 한 곳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어떤 은행에서도 20영업일 안에는 계좌를 만들 수 없다. 2010년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20일 룰’ 때문이다. 반면 인터넷은행 모임통장에는 이런 20일 룰이 적용되지 않아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은행의 모임통장 이용자 수는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금융당국의 보이스피싱 근절 대책이 점차 강력해지자 사기꾼 조직은 문자메시지를 통한 스미싱, 악성코드를 활용한 해킹 범죄 등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보이스피싱도 대포통장 개설, 피해자 개인정보를 알아내 2차 범죄를 저지르는 용도로 활용했다. 특정 집단의 이메일 데이터베이스(DB)를 빼내 청년·소상공인 대상 대출 피싱 메일을 보내는 등 사기 범죄가 점차 지능화·복합화한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중고거래 사기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더치트와 당근마켓의 ‘거래온도’를 통한 검증을 피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와 오픈채팅방에 ‘신상 샤넬백 200만원’ ‘새 아이패드 50만원’ 등 수천 개의 낚시성 글을 올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수천, 수만 명 중 한두 사람만 걸려도 성공인 스팸 사기인 셈이다.
대포통장 계좌가 워낙 많다 보니 피해자가 인지하기 전까지는 어떤 징후도 알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온라인을 통해 매일 계좌번호를 바꿔가며 중고거래 사기를 벌이다 보니 경찰이 피의자를 특정하기도 쉽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벌어진 중고거래 사기의 검거율은 2019년 80.3%에서 지난해(1~7월 집계분) 57.8%로 크게 떨어졌다.
경찰은 온라인을 통해 조직화하는 사기 범죄를 막아내기엔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일선서 수사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며 “변화하는 범죄에 맞게 수사를 효율화하려 조직을 통폐합하고 팀장 중심의 수사 체계를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철오/안정훈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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