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는 생전에 단편집 <불타는 평원>과 장편소설 <페드로 파라모> 단 두 권만 발표했다. 단편집은 별다른 반향이 없었으나 1955년에 발표한 <페드로 파라모>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사의 영원한 고전으로 불리며 1967년에 영화화되었고, 다양한 음악의 테마가 되었다.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룰포는 6세 때 아버지가 피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13세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아원에 들어갔다가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중등 과정과 대학 과정을 청강하며 실력을 쌓았다. 21세 때 내무부 이민국에 다니면서 틈틈이 창작 활동을 해 세계적인 문학가 대열에 올랐다.
룰포가 30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 얻은 영감으로 쓴 <페드로 파라모>는 책장을 넘기자마자 라틴아메리카의 향취를 듬뿍 풍긴다 “코말라에 왔다. 이곳은 내 어머니의 남편 페트로 파라모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마을이다”로 시작할 때부터 이국적이면서 비틀린 관계 속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나 후안 프레시아도를 코말라로 인도한 마부와 마부가 소개한 사람, 나는 둘을 분명히 만났으나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인 듯하다. 텅 빈 유령 마을 어디선가 사람인 듯 유령인 듯한 인물들이 계속 나타나 말을 한다.
차례차례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아 있는 사람인지 유령인지, 프레시아도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고립된 농촌의 고독, 희망 없는 미래,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 폭력과 죽음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삶의 테마가 ‘명백한 혼돈을 요구하는 까닭’에 모든 게 모호하다.
복잡한 것 같지만 스토리는 단순하다. 후안 프레시아도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 페트로 파라모를 찾아 코말라로 갔고, 코말라는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세계가 되었다. 프레시아도는 그곳에서 유령이 된 사람들과 만나며 아버지의 행적을 쫓다 차츰 정신을 잃는다. 그때부터 아버지 페트로 파라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말라의 절대 권력자 페트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갖고 수많은 자녀를 낳는다. 모든 걸 누렸으나 수사나의 마음만은 갖지 못하자 코말라를 황폐하게 만들고 죽음을 맞는다.
스토리는 간단하나 수사나가 사랑한 플로렌시오는 실제 인물인지, 상상 속 인물인지 모호하다. 또 프레시아도는 살아서 코말라에 갔는지, 그곳에서 언제 죽었는지 알쏭달쏭하다. 삶과 죽음,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는 낯선 이야기가 자꾸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발휘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소외된 농촌 문제와 함께 혁명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제시하고 역설하는 부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후안 룰포는 <페드로 파라모> 이후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신화와 전설이 되어버린 이 작품은 모든 문학의 자식이자 요약이며 정점”이라는 평과 함께 “더 이상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는 말이 나왔다. 그가 쓸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겼다는 뜻이다.
<페드로 파라모>는 멕시코 문학을 세계 문학의 정상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가디언’ 선정 세계 100대 소설, 노벨상연구소 선정 100대 문학작품에 올랐다. 후안 룰포는 1970년에 국가문학상, 1983년에 아시투리아스 왕자상을 수상했다. 후안 룰포가 1986년 69세로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삶과 문학을 기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문학상’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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