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시, 현대차 삼성동 GBC 105→55층 변경 거부

입력 2024-05-02 14:17   수정 2024-06-18 19:55


서울시가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105층 랜드마크 1개 동에서 55층 2개 동으로 낮춰짓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계획 변경을 공식 거부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105층 랜드마크의 상징성을 고려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대폭 제공하면서 공공기여(기부채납) 부담을 덜어준 만큼, 랜드마크를 포기했다면 이를 재논의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이미 확정된 기부채납 등을 변경할 사항이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 시작부터 서울시와 현대차가 이견을 나타내며 이미 3년간 지연된 GBC 공사가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서울시 "현대차가 협상 나설 생각 없는 듯"
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현대차그룹이 지난 2월 제출한 국제교류복합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현대자동차부지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 변경안을 반려하겠다는 입장을 1일 공문을 보내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반려된 계획안에는 기존 105층(569m) 랜드마크 1개 동에서 55층(242m) 높이 2개 동으로 나눠짓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는 지난 2월부터 두 달 간 현대차 측에 '도시계획(지구단위계획) 변경안을 보완해달라'는 입장을 2차례 전달했다. 지구단위계획은 GBC부지에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의 높이와 용적률, 기부채납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 등이 담긴 개발 밑그림이다. 서울시는 GBC 같은 상징적인 개발사업의 경우 설계에 맞춰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한다.

그러면서도 공공성을 갖춘 건축물 등을 받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수단(기부채납)으로 민간사업자와의 '사전협상'을 거쳐 지구단위계획을 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105층 랜드마크를 확정하고 착공한 지도 4년이 지났으면 원칙적으론 기존 계획으로 서둘러 진행해야한다"며 "시민들이 다 아는 초고층 계획을 이제 와서 바꾸려면 (협상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현대차의 계획변경을 반려한 이유는 랜드마크 건축 계획을 취소하면서도 이와 연동된 기부채납 등을 바꿀 게 없다고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2019년 확정한 현대차 GBC 부지 개발계획을 보면 3종 주거지를 일반상업지로 세 단계 종상향해 용적률 상한선을 대폭 높여줬다.

서울시는 종상향하는 경우 특정사업자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종상향에 따른 개발이익(토지가치 상승분) 일부를 '기부채납'으로 환수해 공공을 위한 시설을 확충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105층 랜드마크에 대한 상징성을 고려해 2019년 공공기여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당시 기준 대비 완화해 제공했다"며 "랜드마크 계획을 취소하면서도 이를 재논의하지 않으면 서울시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현대차가 협상에 나설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6년간 서울의 랜드마크를 세우기로 했던 땅이 비워져 있었던 만큼 사업을 서둘러야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며 "대화 창구는 열려있지만 현대차가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문이 오면 서울시와 추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4년째 터파기만…1.7조원은 그대로
현대차는 2014년 사옥을 건립하기 위해 삼성동 한국전력 용지(7만9342㎡)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서울시와 현대차는 사전협상을 통해 GBC를 105층(높이 569m) 타워 1개동과 35층 숙박·업무시설 1개동, 저층의 전시·컨벤션·공연장 등으로 짓기로 했다. 서울시는 높이를 569m까지 풀면서 800%의 용적률을 부여했다. 대신 현대차가 1조7491억원을 기부채납하기로 합의했다.

2014년 당시 땅값(10조5500억원)을 포함한 총 사업비는 14조859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2020년 5월 착공했지만 그사이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기존 초고층 설계안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후 4년간 공사가 터파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2019년 확정한 기부채납 1조7491억원의 가치는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게 서울시 주장이다. 서울시 사전협상 운영지침에 따르면 3종 주거지에서 일반상업지로 종상향하는 경우 해당 부지 가치의 40%(공공기여율)만큼 공공기여로 부담하게 돼 있다. 서울시가 제공한 종상향 혜택에 따른 대가인 셈이다. 2016년 산정한 토지 감정평가가에 따라 서울시는 32.4%의 공공기여율을 적용해 1조7491억원의 기부채납을 받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2016년 이후 8년 간 지가가 당시보다 두 배 넘게 뛰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해당 부지의 표준 공시지가는 2017년 1㎡당 3350만원에서 올해 기준 1㎡당 7565만원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착공허가를 받은 2019년을 기준으로 보면 16.3% 올랐다. 지가가 오른 현 시점으로 대지면적의 가치를 계산하면 공공기여율은 15%에도 못 미친다. 지가가 오른 만큼 일부는 서울시민에게 환원해야한다는 논리다.

105층 전망대를 두는 등 랜드마크에 특화된 기부채납을 받아 용적률을 대폭 제공한 것도 서울시가 GBC 계획변경을 문제삼는 이유다. 통상 용적률 인센티브 항목으로 인정하지 않는 도로와 저층부 가로활성화를 위한 상업시설, 지하연결통로까지 인센티브 항목으로 포함시켜 현대차가 큰 부담없이 용적률을 높일 수 있게 해줬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컨벤션 시설과 관광숙박시설, 전망대 등을 짓기로 하고 이를 기부채납으로 인정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대폭 부여했다. 하지만 건축물의 층수가 확 낮아졌기 때문에 더 이상 전망대 자체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등 과거 제공한 인센티브도 재조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바뀐 계획에 맞춰 기부채납 항목도 수정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역·잠실경기장 공사비 부담↑
서울시가 현금 기부채납을 더 받아야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영동대로 복합개발과 잠실주경기장 리모델링 사업의 예산 부담이 컸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울시는 두 사업의 공사단계에 따라 GBC 개발의 현금 기부채납을 순차적으로 받아 두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인건비와 자재값 상승 때문에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사비를 올렸다. 특히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공사는 낮게 제시된 공사비 때문에 두 차례 유찰됐다. 공사비 인상에 따른 재정 투입 증가분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설계 변경으로 현대차가 절감한 사업비는 최대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3년간 공사가 늦어진데다 당초 약속한 랜드마크가 철회됐는데도 현대차는 인허가 때 받은 혜택을 시민들에게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며 "사전협상 원칙은 시민과 시행자가 '윈윈'하는 게 원칙인 만큼 절감한 공사비 일부는 공공기여로 환원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금 기부채납 규모에 지가나 물가상승률을 연동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물가 급등 때문에 받기로 한 현금 기부채납의 가치가 협약 당시보다 급감하는 리스크를 사업자와 분담하자는 취지에서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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