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봐도 팜나무뿐인 ‘정글길’을 한참 달렸더니, 거대한 공사장이 나왔다. 대체 뭘 믿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런 정글에 공단(사말라주 공단)을 지었는가 싶었는데, 입주 기업 리스트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세계 1위 태양광 업체 룽지가 50만5000㎡ 부지에 조성하고 있는 태양광 모듈 공장은 완공 단계였고, 중국 대형 철강회사인 원안철강은 고로를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 공단의 1호 입주 기업은 다름 아닌 한국 기업 OCI홀딩스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OCIM이다. 지난 25일 찾은 이곳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공장 증설 및 금호피앤비화학과 함께 짓는 에피클로로히드린(ECH) 공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OCIM이 이곳에 터를 잡아 성공했다는 소식에 다른 글로벌 기업이 잇달아 따라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일본 대표 화학 기업 도쿠야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2009년부터 2조원을 투입했지만 2013년 완공 후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툭하면 설비가 멈춰서다 보니 손님이 꼬일 턱이 없었다. 가동률은 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OCI는 이 공장의 ‘가능성’을 봤다. 공장 설비를 현대화하고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 어차피 높은 인건비와 전기료 탓에 더 이상 전북 군산 공장을 돌리기 힘들었던 만큼 이를 대체할 해외 공장이 필요하던 터였다. 이 회장은 인수 후 한국 직원 120여 명을 1년6개월가량 공장에 머무르게 하며 설비와 공정을 뜯어고쳤다. 그렇게 한국 OCI 인력이 현지 인력과 ‘원팀’이 되자 가동률은 빠르게 올라갔다.
OCIM은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전기료를 꼽는다. ㎾당 5.2센트로 한국 산업용 전기료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동문 공장장은 “전기를 많이 쓰는 석유화학과 철강, 태양광 기업이 주로 들어온다”며 “낮은 전기료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낮은 법인세도 이 공단의 매력 포인트다. 사라왁주 정부는 도쿠야마의 투자비 2조원을 10년에 걸쳐 법인세 면제 형태로 감면해주기로 했다. 10년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2조원에 못 미치면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낸다는 얘기다. 이번 추가 투자로 OCIM은 법인세를 그만큼 더 감면받게 된다. 여기에 한 달 150만원 수준인 인건비도 원가 경쟁력에 한몫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생산하는 폴리실리콘 생산원가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이유다.
이 회장은 “미국 정부가 중국산 폴리실리콘에 수입 제재를 가한 것도 호재”라며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공장 신설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라왁=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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