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하는 안심소득 제도는 그 대척점에 있다. 소득을 보조하되, 차별적으로 보조한다. 오 시장은 지난 18일 3단계 안심소득 지원대상자 492명을 선발했다며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해 말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세계적 학자들과 함께 안심소득 포럼을 열었다. 여기에 김동연 경기지사의 기회소득이 ‘OO소득’ 시리즈에 가세한 상태다.
소득 시리즈의 공통적인 특징은 현금성이다. 주택이나 음식처럼 현물을 주지 않는다. 이는 각 소득을 지원받는 사람이 원하는 곳에 어디든 그 돈을 쓸 자율권이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특징은 정기성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소득을 받게 함으로써 대상자가 인식하는 ‘매달 쓸 수 있는 돈(가처분소득)’ 자체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세금을 재원으로 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각종 기금이나 특정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 혹은 기부금 등을 재원으로 하지 않는다. 부의 재분배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회비용에 대한 논의도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기본·기회·안심소득은 모두 지방에서 시작됐으나 전국구 정책을 겨냥하고 있다. 막대한 재정 부담 우려에도 주요 소득 제안을 국민들이 살펴봐야 할 이유다.
청년엔 연 100만원, 농촌주민엔 월 15만원 등 특별한 조건없이 줘
야당 대표로서 이 대표는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기본소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다만 최근엔 민생회복지원 명목으로 1인당 25만원씩 나눠주자고 제안했다. 갓 태어난 아기든, 100세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지급한다는 보편성 측면에선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일회성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의 가장 큰 장점은 행정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회보장제도를 대폭 단순화해서 기본소득 하나로 통일한다면 복지 대상자를 선별하고 부당수급자를 찾아내며 제도를 운영하는 데 행정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든다. 전 국민에게 월 10만원씩 무조건 기본소득을 준다면 연간 약 60조원이 필요하다. 최저생계비 수준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훨씬 큰 돈이 들고, 월 50만원을 목표로 잡아도 300조원이 소요된다.
이런 탓에 다른 복지를 대체하지 않는 기본소득의 현실성은 크지 않다. 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 등 현재 주요 복지정책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데 찬성 여론이 높을지는 미지수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의 업무를 AI가 대체하게 되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질 텐데 이를 기본소득 지급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기후행동땐 연 6만원, 아동 돌봄 월 20만원…가치창출 지원금 지급
기회소득은 가치 있는 활동을 장려하는 보조금 성격이 강하다.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정책과는 다르다”며 김 지사가 선을 긋는 이유다. 대표적인 영역이 예술활동이다. 경기도는 예술활동 증명을 한 예술인 1만여 명에게 연 150만원(2회 분할 지급, 1회에 75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예술인 기회소득’을 운영 중이다. 장애인이 가치활동에 참여한 것을 인증하면 월 5만원(하반기 10만원 예정)씩 주는 ‘장애인 기회소득’도 있다. 올해는 체육인 7000여 명에게 연 150만원(2회 분할 지급, 1회에 75만원), 기후행동에 참여하는 10만 명에게 연 6만원, 아동 돌봄에 참여하는 주민에게 월 20만원 등 지급 대상을 넓히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농어민 기회소득은 농외소득 3700만원 이하인 이들이 지급 대상이고, 장애인·예술인·체육인 기회소득은 중위소득 120%(올해는 월 267만원) 이하 소득자에게만 제공한다.
여섯 가지 기회소득을 모두 계획대로 지급할 경우 연간 소요 비용은 약 840억원이다. 현재는 아동돌봄 지급대상자 500명 등 시범사업 단계여서 비용이 절대적으로 많진 않다. 이 제도를 전국적으로 운영할 경우 대상자를 좁게 잡으면 연 1조원대, 좀 더 넓게 잡으면 3조~5조원 안팎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중위소득 이하 가구, 소득 단계별로 보장…근로 장려 효과도
2022년 7월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 중이다. 1차연도 500명, 2차연도 1100명, 3차연도 500명을 뽑아 지원한다. 중위소득 50% 미만 가구에 중위소득 85% 미만에 못 미치는 소득의 절반을 채워준다.
예컨대 올해 어떤 1인가구가 소득이 0원일 때는 중위소득 85%(189만원)의 절반인 94만5000원을 준다. 소득이 111만원(중위소득의 50%)인 가구는 중위소득 85%(189만원)에 못 미치는 78만원의 절반(39만원)을 더해서 가처분소득을 150만원으로 만들어준다.
이 제도의 장점은 지원받는 대상이 일을 해서 소득이 더 생긴다고 해서 복지 혜택을 잃을 위험이 없다는 점이다. 근로소득이 추가되면 지원 금액은 조금 줄어들겠지만 갑자기 ‘0’이 되지는 않게 설계했다. 기초생활보장제와 일하는 것을 장려하는 근로장려세(EITC)의 장점을 결합했다.
이런 식의 설계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한국처럼 경제 규모가 크고 발전한 나라는 선별 지원이 낫다”며 “내가 설계했어도 비슷하게 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기본소득 등에 비하면 훨씬 적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지원대상 가구는 가구원 수,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른 금액을 받지만 연간 수백만~1000만원대 초반 금액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 제도를 현재 지급 기준 그대로 전국에 도입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연 25조~30조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관건은 '무슨 돈으로'
현재 세 가지 소득 정책은 모두 재원 마련 계획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전국 단위에서 시행하면 얼마나 비용이 든다는 말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중이다. ‘효과를 살펴보겠다’던 당초 계획과 달리 사실상 돈만 뿌리고 아무 후속조치가 따르지 않는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이다. 경기 연천군 주민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구상한 농촌기본소득을 월 15만원씩 지역화폐로 받고 있지만 연구비 예산이 충분히 배정되지 않아 효과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행 첫해 효과 분석 이후 3년차에 심층적으로 효과를 분석하겠다고 했지만, 첫해 연구비보다도 적은 예산만이 배정된 상황이다.
또 대부분의 소득 제도는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간 매칭 형태로 사업비를 마련하는데, 이게 잘되지 않으면 중간에 지급이 끊기기도 한다. 올해 경기 의정부시는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청년 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 대표 측도 아직 구체적인 기본소득 계획이나 재원은 밝히지 않고 있다. 초기 기본소득 정책 고안에 참여한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 부자 감세분이 50조~60조원 정도인데 이를 재원으로 삼을 수 있다”며 “전남 신안군이 재생에너지에서 나오는 수익을 주민들에게 햇빛 연금, 바람 연금으로 배당하려 하는데 이런 방법도 고민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은 정책 효과 분석을 진행 중이지만 재원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말이 없다. 김설희 서울시 안심소득추진과장은 “두 달 전 출범한 ‘안심소득 정합성 연구 태스크포스(TF)’에서 세밀하게 다룰 것”이라며 “안심소득과 겹치는 기초보장제도 급여 등 다른 공적 이전소득에서 아낄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비용을 계산하고 재원 마련을 고민할 예정”이라고 했다.
가짓수가 많은 경기도 기회소득은 대상자 선정과 적정 지급액 결정부터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경기도 실무자들은 “일단 윗선에서 예산을 배정하고 나면 거기에 맞춰 지급액과 대상자 수 등을 조정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기회소득 정책 총괄을 맡은 도 관계자는 “향후 사업별 성과에 따라 기회소득별 비용, 대상자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정책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남는 예산을 활용한 선심성 사업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솔직히 OO소득이라는 것은 정무적 판단에 의해 운영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상은/오유림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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