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F1 동력학 엔지니어
-사고 책임에 대한 문제 여전히 남아있어
-그럼에도 인류 자동차 역사에 다시없을 긍정적 변혁
지난해 늦여름 어느 아침 딸아이 등교를 마치고 서둘러 주행차로로 나오려던 승용차에 후미를 받혔다. 나의 25년 무사고 이력은 찰나의 시간에 박살 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경주 F1을 위해 일하는 자동차 엔지니어다. 레이스 트랙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고를 많이 보았기에 안전운전 강박은 나에게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래서 나는 운전하는 동안 나의 모든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을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믿고 살았다.
하지만 그날 아침, 나에게 닥칠 사고를 상상조차 못 했다. 그다지 빠르지 않던 이 사고 순간에도 내 몸은 사고 회피를 위해 한가닥의 근육과 신경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를 인지한 건 '쿵' 소리와 충격에 놀라 사이드미러로 상황을 확인한 후였다. 그토록 자부하던 나의 운전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은 위기의 순간에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만약 쌍방의 자동차에 인간의 지능, 지각, 예측, 반사신경이 미치지 못하는 안전 사각을 보완해 줄 제2의 지능 유닛이 있었다면 이 정도 사고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속에서의 충돌 회피 수준의 인공지능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완전 자율 주행 기술이 제공할 말단 기능에 불과하다. 하지만 테슬라를 필두로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수많은 자율 주행 솔루션들의 완성 시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율 주행 기술의 보편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인 주행 중 발생할 예상치 못한 사고와 이 때 인류 초유의 법적 책임 문제다. 컴퓨터 인공지능이 운전을 하다가 인간의 생명이나 재산에 해를 입힌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에 관한 법적 판단은 자율 주행 기반 산업의 존립에 이어지는 이슈다.
현시점에서 나는 테슬라 FSD에게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맡길 수 있을까? 자율 주행 시스템 오류, 오작동의 결과였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사고 상해에 대해 나는 자동차의 주인으로서 그 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자율 주행의 완성도, 현실 기술이 실현 가능한 자율 주행 능력의 차이에서 터지는 법적 책임의 문제는 자율 주행 포비아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업 자동차 엔지니어인 나는 자율 주행 포비아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지 않길 바란다. 자율 주행 기술은 인류 자동차 역사에 다시없을 긍정적 변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인류사의 20세기를 특징짓는 가장 혁신적 기술 중 하나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기 시작한 19세기말, 자동차 또한 현대 인공지능처럼 인류 최초의 기술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처음엔 자동차란 신문물의 안전성을 믿지 못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사람들은 "말의 도움 없이도 마부 혼자서 안전하고 더 빠르게 운행할 수 있는 마차가 자동차다"라는 주장을 믿기 어려웠다.
마차에서 말은 동력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시적 형태의 크루즈 컨트롤과 충돌 회피 인공지능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마차의 필수 컨트롤 요소였다. 말은 마부가 졸더라도 길을 따라 스스로 달릴 수 있었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알아서 서거나 피할 수 있었다. 말은 마차의 동력이자 자율 주행 컴퓨터였다. 말의 지능을 거세한 자동차란 탈것은 그 이득이 마차의 효능감을 압도할 때만 소비자들에게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동차의 태동기, 자동차의 미래에 확신을 가졌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96년, "말 없는 마차가 질주할 것이다(Carriages Without Horses Shall Go)"라는 사실상 최초의 자동차 공학책이 등장한다. 이 책을 쓴 영국인 엔지니어 알프레드 로버트 세넷 (Alfred Richard Sennett) 은 우마차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자동차가 지배할 20세기를 확신한 현인이다.
계속해서 세넷의 통찰력이 담긴 이 책을 살펴보며 자율 주행 포비아를 이겨낼 사고의 근력을 키워보는 것도 좋겠다. 자율주행은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좋은 기술발전의 예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넘어갔을 때처럼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지만 후대를 위해 먼 미래를 바라보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며 인류사에 있어서 큰 족적을 남길 것이 분명하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김남호 F1 동력학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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