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30일 18:0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자들도 종종 헷갈려 혼용하던 '경업(競業)금지'와 '겸업(兼業)금지' 개념을 아이돌 팬들에게도 각인시킨 가장 큰 계기는 단연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폭탄 기자회견이었다. 민 대표처럼 언론을 장식하진 않았지만 불과 며칠 전 사모펀드(PEF) 시장에서도 경업금지가 판을 뒤흔었다. 상반기 최대 M&A가 유력한 2조원 규모의 지오영 거래에서다.
협상 기간 동안 운용자금(AUM)이 1조달러에 육박한 글로벌 1위 사모펀드(PEF)인 블랙스톤과 300억달러에 달하는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를 동시에 쩔쩔매도록 만든 인물은 조선혜 지오영 창업자(사진)였다.
조선혜 붙잡기가 최대 이슈로
MBK파트너스는 지난 22일 블랙스톤이 보유한 지오영의 지주사 조선혜지와이홀딩스 지분 71.25% 전량과 이희구 지오영 회장이 보유한 지주사 지분 6.76% 중 일부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전체 기업가치는 약 2조원으로 평가됐다. 2019년 지오영을 기업가치 기준 1조원에 인수했던 블랙스톤은 5년만에 두 배 가까운 수익을 올리게 됐다. 창업자인 조 회장은 매각에 동참하지 않고 보유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양측은 지난 2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두 달여만에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거래 성사까진 끝없는 난관이 이어졌다. 거래 초반부터 지오영의 기업가치와 세부적인 계약 구조 등에 모두 합의하고 계약 체결만 앞두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가지 문제에 전전긍긍했다. 조 창업자의 지분 동반 매각을 둔 의사결정이다.
업계에선 경영권거래(바이아웃)을 주력으로 하는 MBK파트너스 특성상 조 회장 지분까지 함께 인수해 경영에서 배제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조 회장은 블랙스톤이 최대주주로 오른 이후에도 지오영과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자신이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오히려 MBK파트너스도 조 회장이 지분을 블랙스톤과 동반 매각해 지오영에서 손을 떼는 게 가장 큰 리스크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조 회장이 블랙스톤과 지분을 함께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SPA 체결까지 이어졌다. 조 회장은 재무적투자자 교체 이후에도 이사회 구성권을 MBK파트너스와 절반씩 갖기로 했고 대표이사 선임권도 보유하게 됐다. 지오영 경영은 앞으로도 자신이 맡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점점 더 힘 강해지는 경업금지
조선혜 회장의 무기는 '경업금지'였다. 조 회장 측은 공식적인 확인은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이야기를 종합하면 조 회장은 블랙스톤과 주주간계약에서 별도의 실효성 있는 경업금지를 맺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PEF의 바이아웃 거래에선 이례적이었다. 당시 국내 진출 후 첫 대형 투자로 지오영을 점찍은 블랙스톤이 조 회장을 묶어둘 협상력을 갖추긴 어려운 구조였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조 회장이 지오영의 2대 주주로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는만큼 별도의 경업금지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조 회장의 경업금지 여부가 협상장을 좌지우지 건 의약도매업 산업 내 조 회장이 구축한 네트워크 때문이다. 2002년 인천병원 약제과장 출신인 조 회장이 창업한 지오영은 당시 글로벌 의약도매업체들이 잠식하던 국내 의약도매시장을 단번에 선점한 인물로 꼽힌다. 올해 초 임기를 마쳤지만 6년여간 의약품유통협회 회장을 지내며 촘촘한 인맥을 쌓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협상 시기에 조 회장이 '새로운 꿈을 찾아 창업해보려 한다'는 문자메시지만 보내도 지오영 기업가치가 절반은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IB업계에선 M&A에서 경업금지의 파워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순히 설비를 돌리는 제조업 뿐 아니라 한 개인의 역량이 기업가치 전체를 좌우하는 무형자산 기반의 기업들이 대형 M&A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이란 측면에서다. 계약서와 법조항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지적이다.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간 분쟁도 하나의 상징이다. 한 글로벌IB 대표는 "하이브가 민 대표의 경업금지를 두고 계약대로 이행하자 주장하지 못하고 수정 요구를 받아준 것도 어도어의 기업가치가 민 대표 개인의 역량에 상당부분 달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M&A 시장에서도 변호사간 문구 싸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갈등이 벌어지는 기점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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