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이 소위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소득보장안)의 손을 들어주는 과정도 그랬다. 구체적 숫자에 기반한 경제와 재정의 논리는 들어설 틈이 없었다.
시민대표단이 선택한 ‘소득보장안’은 보험료를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노후연금 비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게 골자다. 이 안을 적용하면 기금 소진 시기를 2055년에서 2061년으로 고작 6년 늦출 뿐이다. 향후 70년간 누적 적자가 오히려 702조원 더 늘어난다. 2078년 미래 세대는 소득의 43.2%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전형적인 조삼모사식 개악이다.
어떻게 이런 결론이 다수결을 거쳐 도출됐을까. 숫자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탓이 크다. 3주라는 짧은 학습 기간 시민대표단에 주어진 자료에는 재정수지 전망 관련 지표가 대거 제외됐다. 앞으로 70년간 연금 상황이 연도별로 어떻게 변하는지도 보지 못한 채, 기금이 고갈된 후 출생 연도에 따라 세대별로 보험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판단할 근거도 도외시한 채 ‘갈 길’을 덜컥 정해버렸다.
그나마 주어진 자료도 편향됐다. 70년간 적자를 702조원 늘리는 안에는 ‘지속 가능한 안’이라는 선택을 유도하는 이름을 붙인 반면 적자를 1970조원 줄이는 ‘재정안정안’은 이름 없는 서자 취급을 받았다. ‘기존보다 조금 더 내고 그보다 더 많이 받는 안’을 ‘더 내고 더 받는 안’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했다는 지적(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나오는 이유다.
쌀 한 톨이 팽팽한 저울의 균형을 깨뜨리고, 조그만 불량 부품 하나가 우주왕복선을 화염에 휩싸이게 한다. 가장 중요한 ‘숫자’가 빠진 채 진행되는 연금 개혁을 과연 안전하고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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