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상자가 야마모토 리켄으로 결정되면서 일본은 이제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하게 됐다. 우리는 0명이지만, 상의 성격이 국가대항전이 아니라 건축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니 이걸 가지고 한국 대 일본은 0 대 9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몇 년 전 한국 정부는 프리츠커상 수상을 위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걸 만들었다. 청년 건축가 수십 명을 선발해 해외 유수의 설계사무소에 연수를 보내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프리츠커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코미디였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얏트재단은 프리츠커상 후보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각국 건축가들이 후보를 추천할 수 있고, 제출 서류는 이름과 연락처뿐으로 간단하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저명한 건축가여야 한다는 의미지만, 매년 추천되는 후보는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40여 년간 수상자 대부분은 60대 이상이었다. 이들은 미국 일본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뉴욕 보스턴 도쿄 등 대도시에서 교육받고 일한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을 당대 선진 대도시에서 보냈다는 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한 자산임을 보여준다. 1인당 소득이 100달러 미만인 시절 태어나고 자란 우리 60대 건축가들의 체험과는 다른 차원의 경관과 문화 속에서 그들은 자랐다. 물론 2016년 수상자인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같은 이도 있다. 그는 집의 절반을 최소한의 거주 요구에 맞춰 설계하고, 나머지 절반은 거주자들이 채우고 증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주택은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프리츠커상의 취지에 맞는 ‘인류에 대한 공헌’으로 사료된다.
이번 5월에도 건축계는 프리츠커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울분을 토할 것이다. 사회적 공공성을 도외시한 교육, 과도한 관청의 간섭, 시대착오적인 법과 제도 등 여러 이유가 올해도 또 거론될 것이다. 물론 일본과도 0 대 9로 비교될 것이다. 필자는 프리츠커상은 시간이 축적되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상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그것보다는 우리 건축문화가 합리적인지, 지적 자산으로 쌓여가고 있는지를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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