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세계 최고 성능의 (4세대 HBM) HBM3E 12단 제품의 샘플을 5월에 제공하고, 3분기 양산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생산 측면에서 당사 HBM은 올해 (생산분은) 이미 솔드아웃(완판)됐고, 내년 (생산분) 역시 대부분 솔드아웃됐습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CEO)은 2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인공지능(AI) 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BM, 실리콘관통전극(TSV) 기반 고용량 D램, 고성능 엔터프라이즈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 각 제품별 업계 최고의 기술 리더십을 확보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AI 시대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첫 팹(공장) 준공(2027년 5월)을 3년 앞두고 처음 이천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데이터 총량과 관련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곽 사장은 "현재 AI는 데이터센터 중심이지만, 향후 스마트폰과 PC, 자동차 등 '온디바이스 AI'로 빠르게 확산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AI에 특화된 초고속·고용량·저전력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관련 메모리 반도체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김주선 SK하이닉스 AI인프라 담당 사장은 "지난해 전체 메모리 시장의 약 5%(금액 기준)를 차지한 HBM과 고용량 D램 모듈 등 AI 메모리 비중은 2028년 61%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HBM 시장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연평균 60% 수준의 수요 성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곽 사장은 "올해 이후 HBM 시장은 AI 성능 향상을 위한 파라미터 증가와 AI 서비스 공급자 확대 등 요인으로 급격한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HBM 핵심 패키지 공법의 하나인 MR-MUF 기술을 거론하며 기술 우위를 강조했다. MU-MUF 기술은 여러 층의 D램을 한 번에 포장하는 기술이다. 과거 공정보다 칩 적층 압력을 6% 수준까지 낮추고 공정 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4배로 높였고, 열 방출도 45% 향상시키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칩의 휨 현상 제어에도 효과적인 고온·저압 방식으로 고단 적층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란 점을 강조했다.
최우진 SK하이닉스 P&T 담당 부사장은 "MR-MUF 기술이 고단적층(하이스택)에서 한계를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어드밴스드(고도화된) MR-MUF 기술로 이미 HBM3 12단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며 "16단 구현까지 순조롭게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곽 사장 역시 "AI 반도체 경쟁력은 한순간에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HBM도 D램 기술력 기반으로 나온 것"이라며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게 2012년인데, 그때부터 메모리 업황이 좋지 않아 대부분 반도체 기업이 투자를 10% 이상씩 줄였지만 SK그룹은 투자를 늘리는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 확대 결정은 전 분야에 걸쳐 이뤄졌고, 시장이 언제 열릴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있는 HBM 투자도 포함된 결과물로 지금의 HBM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킹이 각 고객사, 협력사와 긴밀하게 구축된 점도 AI 반도체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부연했다.
최근 대규모 투자에 따른 향후 HBM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곽 사장은 "HBM은 고객 수요 기반으로 투자 집행하는 측면이 강하고, 과잉 투자를 억제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며 "HBM4 이후가 되면 고객 커스터마이징(맞춤형·customizing) 수요(needs)가 트렌드가 되고, 수주형 사업으로 옮겨갈 전망인 만큼 과잉 공급에 대한 리스크는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3E 등 첨단 HBM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만큼 용인 클러스터와 청주 M15X 공장 D램 생산기지 전환 등을 통해 주도권을 이어갈 것이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열고 청주 M15X 공장을 D램 생산기지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당초 계획인 낸드플래시 공장 대신 D램 생산능력 확충에 나서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보다 빠르게 D램 생산력 확보에 나선 것. 앞서 SK하이닉스는 120조원 이상을 투자해 경기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반도체 첫 팹 착공은 내년 3월께 착수할 계획이다.
김영식 SK하이닉스 제조·기술 담당 부사장은 "지난달 M15X 팹 건설 공사에 착수했고, 내년 11월 준공 후 2026년 3분기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용인 클러스터를 통해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우리나라 반도체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AI 시대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HBM 시장 차세대 제품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앞서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업계 최초로 개발한 HBM3E 12단 제품을 올해 2분기 내에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HBM을 담당하는 김경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이날 기고문을 통해 "차세대 HBM 초격차 달성을 위해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시스템LSI, AVP의 차별화된 사업부 역량과 리소스를 총 집결해 경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혁신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예상되는 총 HBM 매출이 1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해당 기간 SK하이닉스 역시 100억달러가 훌쩍 넘는 매출을 거뒀다고 전했다.
곽 사장은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누적 매출은 백수십억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실 있는 질적 성장을 위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수익 제품 중심으로 판매를 늘려 수익성을 높이는 한편 변화하는 수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투자 방식으로 현금 수준을 높여서 재무 건전성도 지속 제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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