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하다"…'낙지 탕탕이 쇼'에 해외 호텔 주방장들 환호 [송영찬의 신통유통]

입력 2024-05-02 13:45   수정 2024-05-02 17:28

지난달 2일 서울 광화문에 해외 주요 도시 포시즌스 호텔의 총주방장과 식음료(F&B) 담당자 87명이 집결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산낙지를 손질하는 ‘낙지 탕탕이 라이브쇼’가 펼쳐지자 이들은 연신 “기발하다”고 외쳤다. 테이블 위로는 김부각과 떡볶이로 만든 핑거푸드와 막걸리·소주를 활용한 칵테일이 펼쳐졌다. 다음날 열린 식음료(F&B) 콘퍼런스 세미나엔 한국 사찰음식을 주제로 정관스님이 강연자로 나섰고, 티타임 때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달고나가 등장했다.


이 행사는 글로벌 호텔업계에서의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당초 스페인 마드리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서울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지원은 서울에만 집중됐다. K푸드와 K콘텐츠를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같은 트렌드는 글로벌 호텔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 진출하지 않던 호텔의 국내 진출이 잇따르고, 반대로 한국 호텔이라는 걸 프리미엄 삼아 해외에서 승부를 보는 국내 호텔 업체도 늘고 있다.
글로벌 호텔 韓 진출 '속도'
2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메리어트 호텔은 이르면 내년 서울 삼성동에 자사 브랜드 호텔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대상지는 오는 7월 영업을 종료하는 IHG 그룹 계열의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이다. 브랜드는 '웨스틴'이 유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어트 그룹은 국내에서 자사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IHG그룹은 대신 자사 4성급 브랜드 ‘보코’의 국내 점포망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서울 강남에 이어 오는 7월 서울 명동에 보코 호텔을 연다. 서울 이태원동 유엔사령부 부지를 개발하는 ‘더 파크사이드 서울’에는 2027년 포시즌스·아만과 함께 세계 3대 럭셔리 호텔 체인 중 하나로 꼽히는 로즈우드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국을 신규 호텔 브랜드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아만 그룹은 자사 6성급 호텔 브랜드 ‘자누’의 여섯번째 진출도시로 서울을 낙점했다. 2027년 ‘강북의 코엑스’라 불리는 서울역북부역세권 복합개발 단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반얀트리그룹은 오는 7월 강원 속초시에 국내 처음이자 세계 8번째로 ‘홈(HOMM)’ 브랜드를 적용한 홈 마리나 속초를 연다.
"K콘텐츠에 한국 매력 크게 올라가"
그동안 서울은 도시 크기와 경제 규모에 비해 5성급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호텔판 미쉐린 가이드’라 불리는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가 올해 5스타 호텔로 선정한 곳은 서울에선 포시즌스 호텔과 신라호텔 두 곳뿐이다. 마카오(22개)·런던(20개)·파리(12개)·도쿄(9개) 등 세계 주요 대도시와 비교하면 훨씬 적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가 상황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코로나19 기간 K콘텐츠와 K푸드가 전 세계를 휩쓴 덕분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1분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40만명으로 2019년 1분기의 88.6% 수준을 회복했다. 단순히 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국적과 연령대도 다변화됐다. 호캉스(호텔+바캉스) 열풍으로 내국인 수요도 덩달아 올라갔다. 실제 국내 호텔 평균객실가격(ADR)도 지난해 18만원으로 2020년(11만원) 대비 63.6% 올랐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를 위탁운영하는 국내 호텔 업체들의 협상력도 높아졌다. 해외 호텔 관계자는 “과거엔 국내 호텔 업체들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해외 브랜드 사용을 먼저 요청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며 “이제는 글로벌 호텔 업체들이 주요 개발 부지에 자사 브랜드 입점을 먼저 타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국내 호텔은 너도나도 해외 진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은 국내 호텔의 해외 진출 기반도 되고 있다. 롯데호텔앤리조트는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 부티크 호텔 ‘L7’을 열었다. 종전에 14개의 해외 호텔 대부분을 ‘롯데호텔’ 브랜드로 운영하던 롯데호텔앤리조트가 해외에 L7을 연 것은 지난해 7월 베트남 하노이에 이어 두 번째다. 지금이 해외에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적기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K컬처 열풍이 강한 베트남 하노이 롯데호텔의 경우 연평균 투숙률은 지난 2014년 20%에서 지난해 80%로 네 배 가까이 뛰었다.

다른 업체들의 잰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호텔신라는 내년을 목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비즈니스 호텔 브랜드 ‘신라스테이’를 짓고 있다. 소노인터내셔널은 올해 미국 하와이와 프랑스 파리의 호텔을 인수했다. 국내 호텔업계 관계자는 “K컬처 확산으로 한국 호텔이라는 점이 프리미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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