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 간담회가 화제입니다. 어도어의 모회사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과 민 대표의 갈등이 촉발한 기자 간담회였습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대부’ 또는 ‘창업자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가 최근 관련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한경 긱스가 권 대표의 허락을 받고 해당 글을 그대로 전합니다.
민희진 님을 직장인으로 볼 것인가? 창업자로 볼 것인가? 직장인으로 본다면 '배은망덕하고 통제하기 힘들고 욕심 많은 사람'으로 비난하겠죠. 창업자로 본다면 '야심 크고, 어쩌면 방시혁 님보다 잠재성이 있는 재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해야 할 거예요.
회사에는 직원 명함을 들고 있지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요. 직장인과 창업자. 창업자는 언젠가는 독립해서 반드시 자기 사업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의 잠재성과 야심 그리고 자기 일을 하고자 하는 주도성의 화산이 분출하게 되어 있지요.
저도 10년 직장생활 마지막 1년간 당시 코스닥 상장사 대장주 회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제 기술과 지식과 사업계획을 다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고. 그 분(회사)을 통해서 창업을 하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진짜 회사를 차린다면 민희진 씨처럼 저에게 20% 정도 지분을 주면 그 회사의 자회사로서 창업을 할 생각이었지요.
초짜 어리버리한 창업자의 어리석은 판단이었지요. 진짜 그렇게 성사되었으면 지금 코스닥에 상장된 이니텍·이니시스는 (지금은 망해서 없어진) 그 회사의 자회사가 되어 있겠죠. 다행히 그 대표님이 욕심을 부려서 20% 조차 저에게 줄 생각이 없는게 확인돼서 딜이 무산된 행운(?) 덕분에 그 이니텍·이니시스를 제가 100% 지분을 가지고 온전한 형태의 창업을 하게 되었어요.
어차피 하이브의 방시혁 님도 JYP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독립해서 자신의 회사를 차린 창업자였지요. 아마 방시혁님이 독립하겠다고 할 때 박진영이 유키즈온더블럭에서는 쿨하게 독립시켜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사업가로서 속마음에는 엄청난 갈등과 유혹의 소용돌이가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방시혁 님의 독립에 여러 장치를 걸어서 (돈과 선배 기업의 명성 등을 명분으로 걸고) 20%, 30% 지분을 주는 자회사로 묶어둘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물론 둘 사이에 실제 이런 제안들이 오갔을 수도 있고, 방시혁 님이 다 걷어차고 완전히 독립된 창업을 했을 수도 있고요)
방시혁 님이 민희진 님의 재능과 야심을 보고 함께 일하기로 하면서 단지 직장인으로만 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자신과 같은 창업자로 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이 JYP를 나와서 하이브를 만들었던 것처럼 언젠가 민희진 님도 그렇게 창업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지분 20%를 제안하고 여러 달콤한 미끼를 던지면서 (주주간계약서를 보지 못해서 정확한 내용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리버리한 초보 창업자들은 잘 모르는 불공정하고 그를 영원히 가둘 수 있는 노예계약 같은 것으로 묶어 놓은 것 같아요.
그러나 창업자들 특히 야심차고 잠재성이 높은 창업자들의 주도성의 욕구를 회사·주주 간 계약·정관·지분관계 등등으로 억눌러 놓을 수는 없지요. 창업의 화산은 어차피 거세게 분출하게 되어 있어요. 지금의 사태가 바로 이런 충돌이 너무 커서 외부에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보여요.
저는 창업자를 회사에 가둬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어요. 돈과 스톡옵션과 복리후생이라는 마약이건, 주주 간 계약이건, 정관, 지분관계 등이건 창업자들의 재능과 잠재성을 주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해 왔어요.
창업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잠재성을 주도적으로 발휘할 때 큰 일이 벌어지고 사회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 생긴다고 믿거든요. 방시혁 님이 그걸 입증했잖아요. 게임업계의 크래프톤이 그걸 입증했잖아요. 그러면 민희진 님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막지 말았으면 해요. 어쩌면 하이브보다 더 크고 차원이 다른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한국에서 탄생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구찌를 살린 톰 포드 디자이너는 10년간 구찌의 매출을 13배 키워줬고, 그 후에 자신의 브랜드를 창업해서 지금 3조원 짜리 브랜드가 되었어요. 많은 명품 패션 브랜드 회사들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해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독립해서 자기 브랜드의 패션회사를 만들고 또 다른 명품 브랜드로 등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요.
이게 자연스런 사업의 이치이어요. 구찌랑 톰 포드가 독립하는 과정 중에 고소고발을 하면서 싸움했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너무 많아요. 삼성이 퇴직해서 창업한 창업자들의 뒤를 캐고 소송을 하는 것, 저의 창업과정 경험, 주변의 창업자들이 겪는 경험등에서 이번 하이브의 사태까지 사업의 자연스런 이치를 거스르려는 일들이 우리나라에는 많아요. (큰 회사를 만든 창업자들도 이런 큰 회사를 처음 경영하는 어리버리 초보 경영자인데다가 교만이 넘쳐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아요)
재능있는 잠재적 창업자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후에 자기 회사를 하겠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잡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선을 지키는 아름다움이 필요해요. 욕심과 눌러 밟아 죽일 수 있다는 교만으로 새로운 창업자들을 억누를 수 없어요. 보기 좋지 않은 일들만 생기고 오히려 자신의 명성과 브랜드에 흠이 가는 손해를 입을 뿐이어요. 아니면 필요하다면 1000억원, 2000억원 혹은 1조원, 2조원을 보상해서라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지불하고 사람을 써야죠.
최근 모 IT대기업에서 재능있는 직원이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존경받는 그 IT 대기업의 창업자가 후배 창업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실망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자신의 그 IT 대기업 회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라요. 이미 큰 회사가 된 교만 때문이어요.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조원 넘는 금액에 인수할 때 언론이나 모든 사람들이 마크 주커버거를 독단적이라고 하며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했지만, 만일 지금 인스타그램이 없다면 페이스북 본진의 가치는 10분의1도 안될 가능성이 있지요. 1300조원이 넘는 페이스북의 지금 가치를 생각하면 그때 1조원은 너무 싸게 사서 엄청난 효과를 낸 투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 창업자들의 가치를 인정해서 얻은 이득이죠.
전통 대기업, IT 대기업, 게임업계, 엔터테인먼트업계 모두 재능있는 잠재적 창업가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창업을 억누르려고 하지 말기를 권해요. 눌러도 억눌러지지 않아요.
창업을 하고 입증하면 그 가치를 수십억원, 수백억원 인정해서 그들을 다시 인수하세요. 네이버의 제페토(네이버제트) CEO, COO를 하고 있는 김대욱, 채은석 님은 프라이머클럽 팀을 인재·인수를 한 후에 이 두 사람이 중심이 되어 제페토를 만들었어요. 라인의 신중호 님(라인야후 CPO)도 첫눈 인수한 팀에서 나온 걸출한 인재이죠.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들여서라도 창업자들의 재능과 잠재성을 회사에 넣을 수만 있다면 회사는 수조원, 수십조원 심지어 수백조원의 가치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았어요. 그것을 단지 약간의 싼 미끼와 노예계약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해요.
민희진 님을 직장인으로 볼 것인가? 창업자로 볼 것인가? 생각하는 분들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저는 창업자로 봐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재능있는 초기 창업자의 창업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점(제가 창업 할 때 당할 뻔한 것과 비슷하게)이 안타깝네요. 지금이라도 두 회사(두 사람)가 서로 원만하게 잘 봉합하거나 헤어지는 것으로 더 이상 서로 상처를 받지 않게 마무리하면 좋겠네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기아차·데이콤 근무
△이니텍 창업
△이니시스 창업
△프라이머 창업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