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K팝 크리에이터를 저격한 대가

입력 2024-05-02 18:35   수정 2024-05-03 08:22

이렇게 논쟁적인 캐릭터는 처음이다. 정치인도 아니다. 아티스트이자 기업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 얘기다. 그를 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뉴진스를 단숨에 K팝 대표 걸그룹으로 키운 크리에이터와 하이브에 고용된 계열사 대표 사이에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하이브와 민 대표의 분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다채로운 이유다. 지난 열흘간 진흙탕 싸움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모두 각자의 프리즘으로 사태를 해석하고 있다. 분쟁 내막을 뜯어보면 전례 없는 일투성이다. 자본시장 관점에서도 곱씹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방시혁 중심의 지배구조 직격
항상 분쟁은 초대박 뒤에 터지기 마련이다. 뉴진스의 대성공과 그에 따른 성과 보상 모두 유례없는 일이었다.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전체 산업을 통틀어도 창업자가 아니라 피고용인이 초단기에 대박을 터뜨려 1000억원을 넘보는 보상을 받은 사례는 찾기 힘들다. 지분 수준이나 풋옵션 조건 같은 성과 보상 분쟁은 프라이빗한 영역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 말처럼 “천상계 이야기”다. 어도어 기업가치가 일각의 추정대로 2조원으로 오르면 민 대표(지분 18%)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2일 기준 3600억원) 수준의 부를 거머쥐게 된다.

원칙과 계약을 우선시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민 대표의 행동은 이해 불가다. 이미 사인한 계약서에서 독소조항은 바꿀 수 있어도 핵심 내용을 수정해달라는 요구는 상식적이지 않다. 하이브는 회사와 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물과 욕설로 범벅 된 민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앵글이 바뀌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저격한 ‘군대 축구’ 비유는 본질적인 물음을 끄집어냈다. 민 대표는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주도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이 생긴다. 군대 축구로 비유하면 (상사에게) 공을 몰아주는 것과 같다”고 직격했다. 하이브와의 불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그가 방 의장이 프로듀싱에 참여한 빌리프랩 소속 아일릿에 대해 ‘뉴진스 베끼기’ 의혹을 제기한 맥락이다.
이겨도 지는 게임
민 대표는 그동안 자본시장에서 상상해보지 못한 명제를 던졌다. 자회사(어도어)와 모회사(하이브)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브가 선진 지배구조라고 자랑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에 의구심이 생긴 순간이다.

하이브는 이례적으로 전격 감사를 공개하고 민 대표의 경영권 탈취 정황을 폭로했다. 여론이 민 대표 쪽으로 기울고 있는 건 계약서상의 정의와 현실에서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이 싹트면서다. 하이브 편을 들던 이들도 진실은 좀 더 봐야 알겠다는 식으로 발을 빼고 있다.

결국 사태는 법정으로 갔다.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지분 80%를 가진 하이브가 어도어 경영진을 새로 선임할 것으로 보인다. 배임 여부에 따라 하이브는 주주간계약서에 근거해 민 대표의 어도어 지분을 고작 30억원에 뺏어올 수도 있다.

벌써 이기고도 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 최대 엔터테인먼트그룹이 실력 있는 크리에이터를 저격한 대가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분쟁 이후 열흘 동안 하이브 시가총액이 1조원 증발한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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