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치권 결탁' 비판하는 조합원 강퇴시킨 민주노총

입력 2024-05-02 18:31   수정 2024-05-03 01:00

“위성 정당과 야합한 양경수 위원장은 사퇴하라.”

지난 1일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 마련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전국 노동자대회 연단 앞에 두 명의 조합원이 갑자기 뛰쳐나와 구호를 외쳤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조합원 2만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창 양 위원장이 개회사를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목이 쉬어라 구호를 외치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현장 보안을 맡은 다른 조합원들에게 팔을 붙잡힌 채 퇴장당했다.

돌발 사태에도 양 위원장은 중단 없이 계속 개회사를 읽어 내려갔고, 사회자의 정리 멘트 없이 대회가 이어졌다. 기습 시위를 벌인 민주노총 조합원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양 위원장이 대의원 대회 결의를 어긴 것에 대해 어떤 반성도 없기에 시위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작년 9월 대의원대회에서 ‘전·현직 간부 지위를 이용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후 총선이 다가오자 간부들은 속속 총선판에 뛰어들었고,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 소속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대의원대회에선 거대 양당을 ‘친자본 보수당’이라고 선언하고 어떤 정치적 연관도 갖지 않기로 했지만, 눈앞으로 다가온 금배지 유혹 앞에선 소용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날 기습 시위는 노총 내부의 해묵은 계파 갈등이 반영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내 NL(민족해방) 계열 ‘전국회의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전국회의파 등은 그동안 제도권 정치 진입을 통한 영향력 확대에 관심이 많았다. 총선 시기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 ‘중앙파’ ‘현장파’ 등 나머지 정파와 갈등을 빚어왔다. A씨는 “전국회의파 일색인 지도부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행사 진행을 방해하는 사람은 제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 측은 “기습 시위에 대한 공식 입장은 없다”면서도 “대회 중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의견 개진이 이뤄진 것에 아쉬움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양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노동권을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이어진 집회와 행진에선 ‘정권 퇴진’ 구호가 난무했다. 100만 조합원의 대표 기구인 대의원대회 결의를 어긴 것에 항의하는 시위자를 강제로 쫓아내는 행태를 과연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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