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에서 테크기업만 있는 게 아닙니다. ‘컬처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도깨비어는 ‘K컬처 스타트업’의 앞단에 서 있는 기업입니다. 도깨비어 본사가 있는 오클랜드에서 이영원 대표를 만나 직접 맥주이야기와 창업 스토리를 들어봤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A. 미국에서 한국의 맛과 멋을 담은 수제 맥주 도깨비어를 운영하는 이영원 대표입니다. 올해로 주류 경력 16년 차입니다. 도깨비어는 미국에서 창업한 지 4년 정도 됐습니다.
Q. 도깨비어 창업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2008년에 한국에서 주류 관련 일을 시작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파클링 와인 버니니를 한국에 론칭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샴페인 아르망 디 브이냑과 페트론 등 주류를 한국에 수입 및 유통했습니다. 이후 가로수길과 청담동에 ‘매그넘 더 보틀샵’, ‘매그넘 더 테이스팅 룸’ 매장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7년 전에 미국으로 와 한국의 수제맥주 회사인 ‘더 부스 브루어리’의 미국 시장 진출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Q. 도깨비어는 어떤 브랜드 인가요.
A. 2019년 창업 후 이듬해인 2020년 2월에 처음 제품을 론칭했습니다. 지금까지 50종이 넘는 제품을 출시했고, 10종을 스테디셀러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오클랜드 양조장 겸 매장은 1년 전에 인수했습니다. 맥주 생산은 물론 소비자분들이 직접 맥주를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표 맥주로는 유자를 활용한 ‘유자 블론드’, 대중적으로 쉽게 마실 수 있는 ‘케이비어’, ‘도깨비IPA’가 있습니다. 쌀로 만든 맥주도 있습니다. 그리고 플래그십 아이템인 ‘김치 사워’ 맥주가 있습니다. 이 맛은 호불호가 좀 갈릴 수 있는데 한 번 경험해보신 분 중 좋아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즐겨 찾는 맥주입니다. 연간 생산량은 2만 케이스 정도인데요. 올해는 5만 캔 정도 생산할 예정입니다.
Q. 주요 유통경로는 어떻게 되나요?
A. 미국에 있는 슈퍼체인인 ‘홀푸드 마켓’과 주류전문 체인 ‘토탈와인’, ‘베므모’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시안 레스토랑과 바, 한국 슈퍼 체인인 H마트 등에서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한 700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Q. ‘도깨비어’라는 브랜드명과 발음 등이 미국인에게는 낯설 것 같습니다.
A. 무엇보다 한국적인 모티브를 갖고 싶었습니다. 여러 아이디어를 검토하다 제 아내가 아이디어를 줬습니다. 도깨비는 신출귀몰하고 변화무쌍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만드는 여러 가지 맥주 맛들은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도깨비어가 언뜻 어려울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깨’만 외우면 그 뒤에는 ‘비어’니까 미국인들도 충분히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곳에 판매 중인 많은 프랑스 와인, 독일 맥주 등의 브랜드 중에선 스펠링을 보고도 읽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미국 시장에 잘 파고들었다는 점도 참고했습니다.
Q. 한국 고유의 캐릭터와 컨셉트로 미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역발상을 하신 거군요.
A. 네 오히려 도깨비어로서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갖고 가는 더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독특한 이름은 한 번 기억하면 잊기 힘듭니다. 브랜드 각인이 상대적으로 쉽죠. 다른 브랜드와 헷갈리는 일도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Q. 미국 내에 현재 1만 종의 수제 맥주 브랜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중 캘리포니아에만 1000여 개의 수제 맥주 회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레드 오션인데 네 어떤 시장 확대 전략을 수립했나요.
A.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만든다면 레드오션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만큼 시장이 크기 때문에 시장 공략에 성공하면 큰 성장을 이룰 기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맥주 시장 규모는 40조원이 넘습니다. 이곳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낼 수 있다고 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차별화를 통해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바꾸는 것이죠. 미국에 1만 개의 브루어리가 있지만 그 어떤 업체도 저희가 만드는 건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어는 레드오션에서도 유니콘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UC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할 때 현재 사업과 관련된 공부를 했나요.
A. 학교를 너무 짧게 다녀서 말하기 민망합니다. 한 학기 다녔고요. 전공은 건축학과였습니다. 주류 업계에 일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휴학하고 한국 갔다가, 파트타임 잡으로 이 일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를 한국에서 보낸 뒤 다음에 한 학기를 더 휴학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9년을 일하게 됐습니다.
Q. 도깨비어가 여러 수상 경력을 갖고 있던데요.
A. 제품 디자인의 경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습니다. 맥주 경연대회에서도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습니다. 도깨비어의 맛들이 전통적인 대회에서 상을 줄 때 어떤 카테고리에 넣기 애매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필스너 맥주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재스민 차 성분을 넣었다면 필스너 카테고리에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년 제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알아봐 줬습니다. 그렇게 큰 대회에서 금상, 올해 맥주상도 받았습니다. 작년에는 ‘김치 사워’가 미국에서 제일 큰 수제 맥주 회사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상도 수상이지만 저희로 인해서 맥주 대회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으면 합니다. 창의성을 발휘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맛을 개발한 맥주 브랜드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Q. 50여종의 맛을 개발했는데, 재고 관리에는 어려움이 없나요.
A. 다품종이지만, 한 번 생산하고 레시피만 보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개발한 맛은 한정 수량만 생산하기 때문에 이는 기존 유통망에서 빠르게 소진이 됩니다. 그중에서 소비자분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은 맥주의 경우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소비자의 피드백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재고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다품종소량생산, 이후 스테디셀러 선정해 대량생산’이 도깨비어의 사업 전략이기도 합니다. 소비자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죠.
Q. 창업 직후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상당한 위기였을 것 같은데요.
A. 2020년 2월 제품 출시 직후 팬데믹이 발발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셧다운이 더욱 했습니다. 식당에 가는 것은 물론 밖에 나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배달을 가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 번 갔던 게 또 반응이 좋아서 그다음 주에 또 가게 됐고, 해당 지역을 가는 길에 다른 지역도 들려보자고 해서 다른 지역도 방문하게 되면서 배달로 사업을 꾸려가게 됐습니다.
처음에 짧게 시작했다가 점차 이동거리가 늘어 하루에 300~400km를 운전했습니다. 배달이 몰리는 날에는 하루에 12~13시간 동안 운전했어요. 토요타 프리우스에 맥주 50박스를 싣고 집집마다 배달을 한 것이죠.
Q. 장거리 배달을 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A. 직원도 없이 혼자 하니까 하루 종일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화장실 찾는 일이었습니다. 화장실도 셧다운될 정도였으니까요. 화장실 가는 일을 최소화하려고 커피는커녕 물도 안 마셨습니다. 그리고 푸념하듯 한인 커뮤니티에 “주문해 주셔서 감사한 데 화장실 찾는 게 너무 힘들다”는 글을 올렸더니, 그다음 주부터 제가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집에 와서 화장실 쓰고 가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고객분들이 늘었습니다. 사람의 정과 따뜻한 친절을 느낄 기회였습니다.
Q. 배달을 통한 사업 운영을 얼마나 했나요.
A. 2년 가까이 했습니다. 이후 셧다운이 조금 풀리면서 도로에 차량 운행량이 늘어 배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후 물류 회사 통해 배송했고, 셧다운이 풀리면서 크고 작은 유통매장에 맥주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판매 방식을 바꿨습니다.
2년의 세월이 힘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저의 사업 컨셉트와 목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후회하거나 주저앉는 일 없이 해낼 수 있었습니다.
Q. 캘리포니아 외에 다른 지역의 판매 현황은 어떻게 됩니까.
A. 캘리포니아만 해도 엄청나게 큰 시장이라 현재는 이 지역의 판매망 확대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인근 오레곤, 워싱턴, 네바다주의 유통업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부지역도 이른 시일 내에 론칭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도깨비어를 생산해 납품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소량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올해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Q. 올해는 또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A. 오는 5월18일에 오클랜드에서 치맥 페스티벌을 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치맥 문화를 미국에 알리고 싶었고요, 이를 통해서 도깨비어도 보다 많은 분이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오클랜드는 샌프란시스코나 베이 에어리어의 다른 지역과 달리 흑인 비중이 높습니다. 이곳의 다양한 인종과 함께 치맥 축제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흑인 커뮤니티와 일본, 태국 등 동양인 커뮤니티가 축제에 함께 참여해 자국의 치킨 요리와 맥주를 소개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입니까.
A. 한국 위상과 술 소비량 등에 비해 글로벌 주류업계를 주름잡는 브랜드가 없는 것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도깨비어를 시작으로 다양한 주류 제품들을 미국에 론칭하고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적인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꿈입니다. 미국에서 ‘K컬처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Q. 좋은 맥주란 무엇인가요.
A. 마시는 분들이 즐길 수 있는 맥주라고 생각합니다. 품질과 가격, 풍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좋은 사람과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맥주는 마시는 그 순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맥주를 마시는 거라고 믿습니다.
Q. 경영 철학 혹은 뭐 좌우명이 있나요.
A. ‘오늘이 제일 젊다’는 말을 자주 되뇝니다. 항상 도전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하다 보니 그때는 멋모르고 항상 도전했는데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안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오더군요. 저는 그런 부분을 경계합니다.
도깨비어가 앞으로도 오랜 시간 신출귀몰하고 변화무쌍한 브랜드였으면 합니다. 10년 후후 혹은 20년 뒤에 도깨비어가 더 큰 기업이 될 수 있는데 그때 가서 안주하는 건 싫거든요. 지금도, 앞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제 생각이자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철학입니다.
Q. 미국에서 주류, 외식업을 하고자 하는
A. 과거 몇 년 전과 비교해도 동양의 문화,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의 브랜드 위상은 어마어마하게 높아졌습니다.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K팝, K드라마, K뷰티 등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그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져가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은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좋은 기회들이 많이 열릴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다만, 해당 사업을 왜 하고 싶은지, 그것이 나와 어떻게 연결이 돼 있는지, 어떤 미션을 가졌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이 가진 미션과 거기에 나 자신을 어떻게 녹여서 제품으로 승화할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클랜드=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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