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유럽계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의 불법 공매도 거래에 500억원에 가까운 '역대급' 과징금을 매길 전망이다. 작년 BNP파리바에 부과한 기존 최대 기록 190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금감원이 글로벌 IB 총 14곳에 대해 벌이고 있는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가 마무리되면 1000억원을 훌쩍 넘는 과징금 처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에선 이같은 강경 조치를 사실상 금융감독당국의 공매도 시스템 개선 유도책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감원이 발표한 공매도 위반금액 중엔 지난해 발표한 BNP파리바(397억원), HSBC(156억원) 등이 포함돼 있다. 크레디트스위스(CS)에 대해선 약 1000억원 규모 불법 공매도를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증권의 위반금액 합계가 1168억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이외 다른 IB 5개사에 대해선 총 388억원 규모 무차입 공매도 혐의를 발견했다.
금감원은 크레디트스위스엔 약 500억원 규모 과징금을, 노무라엔 약 4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사전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현실화하면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 제도를 도입한 이래 역대 최대 과징금 액수가 된다. 최종 과징금 규모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확정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부분 무차입 공매도는 내부통제나 시스템 미비에 따라 발생했다.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의 규모가 확정되기 전에 매도 주문을 제출하거나, 단순 착오·IB 내부에서의 중복계산 등으로 대차 규모를 오인해 매도 주문을 제출한 식이다. 수기입력 과정에서 차입수량을 잘못 입력하거나 보유잔고를 확인하지 않고 주문을 낸 경우도 발견됐다.
금감원은 이들 모두에 대해 ‘단순 과실’로 넘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각 IB의 대차잔고확인·주문·내부통제 시스템이 국내 법 규정과 어긋나게 설계됐거나 운영되고 있다면 그 자체부터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한국 시장에서 법률상 요구하는 수준이 있는데 이를 시스템에 반영하지 못했다면 규정 위반이 되는 것'이라며 "한국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당연히 한국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잔고 부족을 인지했거나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공매도 주문을 진행한 경우, 조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경우 등에 대해서도 단순히 과실로 볼 수 있을지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당국은 최근 불법 공매도에 대한 조치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작년 금융감독당국이 불법 공매도 거래에 30여개에 대해 매긴 과징금·과태료 규모는 370억원을 웃돈다. 직전 해 28건에 대해 매긴 과태료·과징금 총액(23억5000만원)의 약 16배에 달한다.
올해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에 대한 과징금이 금감원 양정 수준으로 확정된다면 두 곳에 대한 과징금만으로도 작년 수치를 넘어서게 된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HSBC와 BNP파리바에 대해 금감원이 사전통보한 과징금 금액에 대해 증선위가 거의 감면을 하지 않고 센 결론을 내렸다"며 "당국은 불법 공매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제재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IB의 공매도 거래는 대부분 헷지펀드 등 주문자가 따로 있고, IB가 거래를 맡아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다. 이같은 거래에 대해 위반금액의 절반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사실상 금융감독당국의 공매도 시스템 개선 유도책이라는 게 증권가의 해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게자는 ”금융감독당국이 수수료 기반 거래에 대해서도 100억원 이상 규모 과징금을 재차 부과한다는 것은 글로벌 IB에 대한 명백한 경고 사인으로 볼 수 있다“며 ”불법 공매도에 따르는 잠재적 비용을 급증시켜 무차입 주문 자체를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함 부원장은 "잔고 관리 문제가 적발된 회사들은 앞으로 주문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이라며 "NSDS 구축과 법제화엔 시간이 좀 걸릴 전망이니 각 기업들이 불법 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관련 법제화가 이뤄지기 전에도 당국의 지적을 먼저 반영해 시스템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김익환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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