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유럽계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의 불법 공매도 거래에 500억원대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할 전망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불법 공매도 28건에 매긴 과징금(23억5000만원)의 스무 배가 넘는 규모다. 증권가에선 글로벌 IB들이 자체적으로 공매도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강력한 제재 조치를 꺼내 들었다고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금감원의 조사가 마무리되면 글로벌 IB 10여 곳의 총과징금 규모가 1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불법 공매도 과징금은 주문의 고의성을 비롯해 위반금액 규모, 위반을 통한 이득 규모, 주문 체결률 등에 따라 달라진다”며 “원칙적으로 위반금액의 최대 100%까지도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금감원은 글로벌IB 9곳의 불법 공매도 거래에서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와 연계된 직접적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다수 IB가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불법 공매도를 자행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부분이 수수료 수익을 키우고 차입·거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차입 거래 관행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글로벌 IB들이 공매도 규정 위반에 따라 얻은 부당이득 규모가 크지 않고 손실을 본 사례도 일부 있다”고 했다.
글로벌 IB의 공매도 거래는 헤지펀드 등 주문자가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IB는 거래를 맡아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다. 이 같은 거래에 위반금액의 절반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수료 기반 거래에 대해서도 100억원 이상의 과징금을 재차 부과하는 것은 글로벌 IB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명백한 경고 사인”이라며 “불법 공매도에 따르는 잠재적 비용을 급증시켜 무차입 주문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부분 무차입 공매도는 내부통제나 시스템 미비에 따라 발생했다.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의 규모가 확정되기 전에 매도 주문을 제출하거나, 단순 착오·IB 내부에서의 중복계산 등으로 대차 규모를 오인해 매도 주문을 제출한 식이다. 수기 입력 과정에서 차입 수량을 잘못 입력하거나 보유잔량을 확인하지 않고 주문을 낸 사례도 발견됐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단순 과실’로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각 IB의 대차잔량확인·주문·내부통제 시스템이 국내 법 규정과 어긋나게 설계됐거나 운영되고 있다면 그 자체부터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함 부원장은 “한국 시장에서 법률상 요구하는 수준이 있는데 이를 시스템에 반영하지 못했다면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한국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한국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날 글로벌 IB에 공매도 시스템 전산화 개선 등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금감원이 지난달 말 공개한 불법 공매도 중앙차단시스템(NSDS) 등 전산시스템 구축 방안이 시행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각 사가 시스템을 개선하라는 얘기다.
함 부원장은 “잔량 관리 문제가 적발된 회사들은 앞으로 주문 과정에서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며 “NSDS 구축과 법제화에 감독당국의 지적을 반영해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김익환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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