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우 마이다스그룹 회장·마이다스아이티 최고인사책임자(CHO)
지난 10여년간 600여 차례 강연과 교육을 통해서 많은 경영자들을 만났다. 경영자마다 처한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경영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진다.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 중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경영자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경영자는 자신의 몫만큼 최대한의 짐을 지고 혼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경영자는 언제나 고단하고 고독하다.
경영을 모르던 기술자가 어쩌다 근 30년을 경영자로 살아왔다. 어느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지금도 매일 흔들리고 비틀거린다. 돈 때문이 아니다. 사람 때문이다.
경영은 사람에 관한 일이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람에게서 힘을 얻지만, 사람으로 인해 아프고 힘든 일도 많다. 더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면, 사람을 사랑하는 한 경영자는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다.
자연, 생명, 인간 그리고 사회도 그렇다. 원자는 소립자들의 상호작용으로(원자=소립자×소립자), 분자는 원자의 상호작용으로(분자=원자×원자) 형성된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몸속의 생명 분자와 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시도 쉬지 않고 상호작용을 하는 덕분이다. 사람은 타고나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고(사람=유전자×환경), 인생도 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 결과이다(인생=자신×세상). 사회와 문화는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이 축적되어 발전한다(사회/문화=사람×사람).
경영도 마찬가지다. 경영은 조직과 시장의 상호작용이다(경영=조직×시장). 기업은 성과를 통해 시장과 고객이 욕망하는 효용 가치를 제공한다. 시장은 다시 기업에 매출과 이익을 통한 성장과 발전이라는 가치를 돌려준다. 상호작용을 통한 가치거래 결과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또한 조직 문화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되는 질서이다. 조직의 집단 시너지도 상호작용의 매개로 만들어진다. 상호작용에 경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도 시장도 본질은 사람이다. 조직에서 효용을 생산하는 주체도, 시장에서 효용을 구매하는 주체도 사람이다. 조직과 시장을 연결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다. 기술은 사람의 자원을 이용해서 사람의 효용을 생산하는 절차적 수단이다. 마케팅과 영업은 사람이 만든 효용을 사람의 욕망과 연결하는 행위다. 경영은 본질적으로 사람 변수로 구성된다.
경영은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행위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행복이고 성장이다. 당연히 경영의 목적도 사람의 행복과 성장이어야 한다. 이것이 경영의 답이 ‘사람’에 있는 이유다. 따라서 ‘경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면 ‘과학’이 필요하다.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의 원리를 규정하는 생화학과 분자생물학, 생물 진화와 더불어 사람의 본능과 본성을 규명하는 다양한 생물학, 뇌 구조와 기능의 이해를 통해 사람의 사고와 행동의 인지적 특성을 밝히는 신경과학 등 자연과학을 통해 이해한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너무나 간명하다.
첫째, 사람은 모두 과거의 결과다. 세상 모든 존재는 같은 근원을 갖고 있다. 세상 만물은 138억 년 전 빅뱅(Big Bang)에서 시작된 물질의 동기이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물은 38억 년 전 생명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뿌리가 같은 동족이다. 그렇게 우리 사람은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 존재한다.
둘째, 사람은 모두 생물, 동물, 인간이다. 사람은 항상성을 추구하는 ‘생물’이다. 또한 신경망을 가지고 반응하고 적응하며 대응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우리는 서로 관계하고 나누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인간’이다. 생물, 동물, 인간의 결인 본능과 본성 그리고 인성을 가진 ‘생동인(生動人)’이다.
셋째, 사람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다. 사람은 ‘생동인’의 결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억을 축적하고 이기적 존속, 사회적 성장, 정신적 완성이라는 욕망의 길을 가는 존재다. 우리가 이기적인 이유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적인 이유는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문화적 존재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이라는 말이 있다. “변하지 않는 한 가지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만 가지 변화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 현상들의 이면에 있는 ‘본질’이다. 본질은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기능하는 데에 필수적인 핵심 요소와 특성이다. 어떤 것의 본질을 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과 이유를 아는 것이다.
경영의 답은 사람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본질이 씨앗이라면, 실용은 열매다. 씨앗과 열매의 본질이 유전자인 것처럼 본질과 실용도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따라서 진정한 실용은 본질에서 나온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에 기반한 실용을 추구하는 진짜 지혜다. 경영자란 합리(合理)로 ‘사람의 결’을 알고, 합리(合利)를 위한 ‘경영의 길’을 찾는 사람이다. 가짜와 거짓을 거르는 진실의 채는 과학이다. 이것이 경영이 과학에 길을 묻는 이유다.
과학은 ‘인과’를 연결하는 정직한 학문이다. 인과는 지혜로 본질과 실용을, 기술로 이치와 가치를 연결한다. 사람은 과학의 눈으로 ‘이치’를 밝히고, 기술을 통해 ‘가치’를 캐내어 인류 문화와 문명을 창달해왔다.
경영은 현재의 자원을 미래의 가치로 만드는 인과 연결 행위다. 그러므로 경영은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적‘이란 사람의 결을 합리적 ‘이치’로 이해하고, 실용적 ‘가치’로 연결하는 인과의 다리를 놓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과학은 아직 원시적이고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과학은 인류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합리적인 시각을 선사했다. 인류는 과학을 통한 예지적 시각을 통해 스스로 미래를 밝혀왔다. 특히 계몽시대 이후 인류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합리의 세계를 열었다. 과학은 실용을 위한 기술로 이어져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현대 문명의 꽃을 피워냈다. 중세 암흑시대에 드리웠던 미망의 장막이 거둬지고 과학이 새롭게 합리적 개안을 제공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한 것이다. 과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명확한 인과적 체계 때문이다.
사람의 본질에서 경영의 실용을 찾는 지혜가 곧 ‘사람경영’이다. ‘사람경영’은 자연이 만든 인간의 결이 잘 드러나도록 돕는 경영이다. 과학적 합리(合理)에 기반하여 합리(合利)적 실용을 생산하는 경영이다. 사람에 대한 합리적 이해로부터 시작하여 좋은 인재를 뽑아 성과 창출을 돕고 훌륭한 인재로 육성하는 것이 ‘사람경영’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사람경영’은 사람의 본질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과학경영’이고, 사람의 성장과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본 경영’이며, 기업의 발전과 사회의 번영을 지향하는 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실용 경영’의 다른 말이다.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이라는 말이 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좇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경영하는 것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영의 시작과 지향은 사람이다. 경영은 사람에 대한 합리적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경영은 사람과 사회의 행복을 지향한다. 그래서 경영자에게 주어진 책임은 사람과 사회를 돕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은 이기(利己)의 에너지로 이타(利他)의 가치를 생산한다. 기업 경영의 발로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이기라 해도, 기업이 생산하는 가치는 철저히 사회의 이익으로 연결되므로 이타인 것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도, 사람경영의 목적도 본질은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기업은 유한하고 사회는 무한하다. 진짜 주인은 사회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거대한 ‘인간 유전자 풀’이며, 사회가 추구하는 것은 유전자 풀의 ‘존속’이다. 기업 역시 본질적으로는 유전자 풀의 존속을 위해 종사한다. 그래서 기업의 역할은 사회를 먹이고 살리는 것이다. 사회를 먹이고 살리기 위해 사람을 키우고 남기는 것이다. 기업은 사람을 키우는 ‘터’여야 한다. 잘 클 수 있는 사람을 뽑아 더 잘 클 수 있도록 돕는 것, 더 나아지려는 사람들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경영의 전부다.
사람 농사도 마찬가지다. 경영자의 일은 자연이 빚은 사람의 결이 최대한 잘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다. 사람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한다. 사람이 결대로 스스로 클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경영자의 마땅한 책무이다.
경영자는 자신의 삶에서 만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능력과 책무를 동시에 지닌 사람이다. 능력은 그대로 책임과 비례한다. 경영자에게 행복이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고 그사이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바로 행복이다. 능력이란 곧 행복한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힘이다. 능력은 행복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세상 사람끼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능력은 책무이다. 행복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책임이고, 존재의 이유이며, 나눔의 실천이다. 경영자의 가슴은 따뜻해야 한다. 경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실재적이고 실용적인 행위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5월 3일자에 게재된 한경에세이 ‘사람의 결에서 경영의 길을 찾다’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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