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빌런을 대하는 '불변의 원칙'

입력 2024-05-07 17:20  



최근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인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원칙』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행동 방식'을 파악하면 앞날을 현명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울림이 있는 말씀이다.

이 뛰어난 성찰은 기업이 오피스 빌런이라 부르는 악성 문제 직원을 대할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즉, 기업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이들의 행동 방식을 알고, 그에 맞는 대응 원칙을 찾아야 한다. 그 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악성 문제 직원을 대응하는 대원칙과 실행 원칙을 정리해본다.

우선 대원칙은 '장기적 관점'이다. 이들과의 분쟁을 기강 확립과 질서 회복이라는 장기 목표의 관점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단계씩 차근차근, 그리고 확실하게 대응한다는 뜻이다. 손쉬운 분쟁 해결 방법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간혹 이들이 소위 '기가 죽어' 사건의 조기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관행에 벗어난 강경 조치를 하거나, 당장 퇴사 협상에 나서는 기업을 본다. 비유하자면 지구전(持久戰)이 아니라 전격전(電擊戰)을 펼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이 일으키는 사내질서 문란이 너무 심각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탓에, 또 이 기회에 일벌백계하자는 누군가의 의도가 가미되는 것 등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이런 '전격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이들은 윤리의식, 공감능력, 관계 설정에 결함이 있고, 자기성찰과 반성력이 약한 편이다. 자기 정당성에 확신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불리해 보이는 상황이더라도 자기 입장을 꺾지 않고 법적 분쟁을 불사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강경 조치가 아닌 통상의 조치가 이뤄졌음에도 기업과 정면 대결 태세를 취하고 전선을 넓히면서 전면전(全面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마당에, 앞에 본 것처럼 강경 조치가 이루어지면 그 부작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분쟁 대상이 계속 확대되며 종결이 늦어진다. 그 과정에서 분쟁이 진행되면 될수록 강경 조치에 내재된 약점이 부각되면서 기업에 큰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기업의 편이 아닌 상황으로 사안이 전개된다.

물론 분쟁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복잡 다양하다보니 강경 조치가 의도대로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가끔 접할 때도 그것은 우연일 뿐 애초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연전 연패하다가 끝내 굴욕적 조건으로 퇴사 합의를 하는 기업, 첫 강경 조치가 좌절된 후 이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킴에도 혹시 보복조치라고 반격 받을까 우려하여 과감한 대응에 나서지 못하며 끙끙 앓는 기업이 숱하다.

따라서 악성 문제 직원을 대하는 기업은 좀 더 장기적이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아무리 이들의 인격과 평판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라도 밝혀진 객관적 비위 행위에 상응하는 대응부터 시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 없이 부적절한 언동을 계속할 때 추가 대응해야 한다. ‘정법 대응하면서 상황이 전개 되는대로 순리에 따라 대응한다’, ‘인사 관리상 어려움을 겪는 부작용은 감수하고 돌발사태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한다’는 태도라 할 수도 있다.

이런 장기적 관점으로 이들과 대응할 때, 지켜야 할 실행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첫 단추 원칙'과 '수신제가(修身齊家) 원칙'이다.

우선 '첫 단추 원칙'은 악성 문제 직원에 대한 첫 조치의 성패는 추후 펼쳐질 분쟁에서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업은 첫 조치에 고도의 자제력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들을 해고했다고 해보자. 해고에 관한 분쟁은 웬만하면 조정이나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과의 분쟁은 그러한 경로를 잘 따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패소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분쟁에 지친 기업이 합의를 제안해도 거부하고 끝내 최종 판결까지 받고, 그 과정에서 처음 쟁점과 무관한 사안으로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기업이 첫 조치를 관철할 수 있는지는 향후 이들과 벌어질 분쟁의 전개 방향을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이 된다.

구체적으로 분리조치, 배치전환, 평가 불이익, 징계 중 첫 조치가 무엇이건 이들은 가처분, 손해배상, 부당징계 구제조치, 진정 등을 통해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견해야 한다.

이때 기업이 법원, 노동위원회, 노동청으로부터 그 첫 조치의 정당성을 인정받아 관철할 수 있다면 이제 시간은 기업 편이다. 이렇게 기업이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후속 분쟁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자기 편으로 하려면, 기업은 향후 관련 직원의 퇴사 등의 경우에도 입증에 문제가 없도록 사실관계 파악을 철저히 하고, 첫 조치를 결정할 때 최대한 온건해야 한다. 안전판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입증이 애매한 비위행위는 징계사유에서 과감히 제외하고 △징계 수위를 통상보다 한 단계 낮추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징계를 하기 전에 기업에 재량이 더 많이 인정되어 정당성을 인정 받기 쉬운 대기발령, 업무 전환, 분리조치, 저성과자 업무개선 프로그램 실행 등 인사조치를 먼저 실행하는 것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 원칙'은, 기강 확립과 질서 회복(治國平天下)을 위한 첫 조치에 이르기까지 방어권 보장, 협의 등 절차를 먼저 철저히 지켜 떳떳해야 한다(修身齊家)는 것이다.

악성 문제 직원들은 첫 조치가 내려지면 기업이 편견을 가지고 악의적으로 자기를 괴롭힌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조사나 징계과정 절차를 일일이 따지며 조그만 문제도 부풀려 부당성을 문제 삼는다.

심지어 조사를 진행한 담당자들을 대거 진정하거나 고소하기도 한다. 실제로 기업 인사 과정에서는 10명 남짓 되는 작은 기업에서 절반 이상의 직원이 진정, 고소를 당하거나, 인사 담당자들이 모두 진정을 당하는 바람에 조사를 외부 의뢰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사례도 등장한다.

이런 전개는 모두 기업 예상을 벗어나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이다. 옳건 그르건, 본인들의 △상황 인식("모두 나를 해하려 한다") △목표("부당한 압력을 이겨내고 법을 통해 정상을 회복해야 한다") △판단("법은 내 편이다")이 기업과는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조사 과정에서 그 직원이 악성 문제 직원이라는 판단이 서면 절차를 문제 삼을 빌미를 아예 주지 않아야 한다. 공정성을 기본으로 하는 노동조사와 징계에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그런 직원들에 대해서는 한층 더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살얼음 위를 걷는 듯이 조심한다.

예컨대 △규정 여하를 떠나, 노동조사 과정에서 합리적인 범위에서 변호사 참여를 보장해 주고(단, 사실 규명을 방해하지 않도록 진행 규칙을 미리 정한다) △조사 기일 조정이나 조사 방법 변경 요청에도 최대한 유연하게 응할 수 있다. 또 △퇴사 강요나 직장 내 괴롭힘 주장의 빌미가 되는 권고사직 권유를 삼가고 △그동안 조사나 대응조치의 관행을 살펴 그에 벗어나는 조치는 가급적 피해서 △애매한 경우에는 전문가 자문을 받아서 그에 따른다.

이제 이들 원칙이 작용되는 모습을 한번 살펴 보자. 상습적 괴롭힘 가해자로 확인된 A에 대해 기업이 장기 분쟁이 일어날 것을 각오하며 앞서 원칙에 따라 대응했는데, 배치전환과 정직 2주의 첫 조치를 받은 후 구제불능의 악성 문제 직원이라고 보았던 A가 뜻밖에 첫 조치에 순응하고 새로 배치된 부서 직원과 관계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보자.

이 경우, 우선 원칙을 지키면서 쏟은 기업의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말 A가 개선되었다면, 오히려 기업 인사관리의 성과이자 악성 문제 직원일지 모른다는 당초 우려가 빗나갔을 뿐이다. 보험 가입 후 보험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더 주목할 것은 그 이후 일어날 수도 있는 부정적 전개다. 예컨대, 한동안 잠잠하던 A가 옮겨 간 부서에서도 다시 유사한 괴롭힘을 자행하는 경우다. 처음 우려가 아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당할 것이다. 이제 A는 정말 악성 문제 직원일 확률이 상향 갱신된다.

그 때 기업은 새로운 조치를 준비하면서, 다시 앞에 설명한 원칙들에 따라야 한다. 즉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신중한 첫 조치를 준비하며, 철저하게 절차를 준수한다. 이미 동일 원칙을 따랐던 첫 대응에 이어지는 이번 새로운 대응은 올바른 첫 대응 덕분에 일관성을 확보해 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더 강력해진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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