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경상도 욕을 찾다가

입력 2024-05-08 18:00   수정 2024-05-09 00:23

청소년 시를 쓰다가 경상도 사투리가 가물가물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가 엄마 생일 깜박하면 뭐라고 욕해?” “대뜸 전화해서 뭐라는겨. 왜 그려?” 경상도 사투리가 필요한데 포항 사는 엄마가 충청도 사람인 걸 깜박했다. “엄마는 욕을 그렇게 잘하더니, 그게 다 충청도 욕이었어?” 전화기를 붙들고 궁리를 해도 생각이 안 난다. 한참을 그러다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에게 연락하게 됐다. “이게 누꼬? 잘 있었나?” 전화를 걸자마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디 주 차뿔라” 통화 중에 욕을 들어도 웃음이 터진다. 청소년기엔 말끝마다 욕을 했다. 실내화만 벗겨져도 ‘미쳤다’ ‘돌았다’ 그랬다. 다들 욕을 쓰니 그땐 욕이 욕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욕하는 사람을 보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나는 입때껏 한 번도 욕을 안 해 본 사람처럼.

인제 와 그 시절 친구들과 나눈 욕에서 느껴지던 친밀감이 그리워져 시로 재현하려 하는데 친구가 알려주는 욕마다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도 내가 찾는 욕이 아니다. “뭐꼬, 와이래 어렵노?” 사투리 욕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리운 친구와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좋다. 최선을 다해서 알려주려는 친구도 일찌감치 욕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카페에서 함께 작업하던 은지 시인이 묻는다. “이번 칼럼은 무슨 얘긴데?” 욕에 대한 글이라고 했더니 은지 시인이 대뜸 자신은 그 방향에 반대한단다. “이럴 때 쓰라고 욕이 있는 건가봐” 그 말에 또 한바탕 웃었다. 이런 농담도 우리의 맥락 안에서는 쉽게 삐뚤어지지 않는다.

경상도 욕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죽은 사람에게도 욕하지 말라’는 옛말에 “아무래도 욕에 대한 칼럼을 쓰는 건 아닌가 봐…”하며 위축됐다가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주는 해학적 위안도 알게 되고 북한에서는 ‘욕’을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리워한 것은 욕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 사이에 고였던 지루함을 깨뜨리는 통쾌한 말들이 아니었을까? 욕이지만 욕 아닌, 우리 사이에서라면 절대 삐뚤어지지 않을 욕. 오해 없이 위트와 애정만을 골라 들을 수 있는 능력자들 사이에서라면 욕도 사랑이 되겠지.

연두가 가자, 초록이 온다. 이팝나무는 쌀밥을 매달고 왔고 아카시아는 백열전구를 매달고 온 것만 같다. 날마다 산이 옷을 갈아입듯 나도 언어의 옷을 부지런히 갈아입으며 살아왔구나. 갈아입을 옷이라고 생각하니 ‘욕’에 대해서도 초연해진다.

5월의 첫 주에 포항에 내려왔다. 밤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에 취해 벌처럼 코 박고 자고 싶은 충동이 든다. 5월은 꿀벌들의 분봉 기간이기도 하다. 5월은 산이나 바다나 강이나 모두 바쁘다. 산란기이기 때문이다. 산란이란 말과 엄마라는 말은 참 가깝고도 먼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서툴고 부족한 나를 위안해 주는 건, 엄마인 나의 엄마다. 나는 자주 학교에 도시락과 실내화 가방을 놓고 다녀서 욕을 먹었다. 충청도 욕이었겠지. 그러나 그건 모두 추억. ‘그래 엄마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나는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 내 아이도 모르지 않을 거야.’

어버이날이 있는 5월 이병일 시인의 엄마라는 시를 읽어본다. “매일 속아주면서 나를 대접해 주는 사람” 1번 국도를 휘어진 해안선. 파도 소리에 귀가 멍든 집들. 바다를 보며, 엄마가 나를 낳고 바라볼 때, 그 첫 마음을 생각한다. 첫, 이란 글자는 엄마에게서 떨어져나왔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첫째 딸, 5월의 첫 주, 모든 것이 싱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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