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눈치보다…플랜트 현장 '외국인력 도입' 물건너가나

입력 2024-05-09 18:10   수정 2024-05-10 00:32

플랜트 건설 분야의 외국 인력 도입 논의가 막판 제동이 걸렸다. 올 하반기 인력난이 절정에 달할 것을 우려한 업계는 외국 인력 도입을 촉구해 왔고 정부도 그동안 허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동계가 파업까지 거론하며 ‘결사반대’에 나서자 정부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노조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지 2월 15일자 A1, 3면 참조
○플랜트 인력 도입 ‘허송세월’
이주안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은 9일 정부세종청사 국무조정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 인력 도입 논의를 중단하지 않으면 임단투(임금·단체협상 투쟁) 시기에 쟁의권을 확보하고 총력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내국인만 취업이 허용된 플랜트 건설업에 외국 인력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는 정부를 향해 ‘검토 중단’을 촉구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업계와 노조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가 실태 파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플랜트 건설 근로자 수요는 14만4600명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선 이를 기준으로 올해 2만1000명의 근로자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비가 9조원에 달하는 에쓰오일의 초대형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사업인 ‘샤힌 프로젝트’를 비롯해 전국에서 12개 사업이 줄줄이 진행되거나 예정돼 있어서다. 이들 현장에 들어가는 투자금은 52조원에 달한다.

업계는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플랜트 건설업을 비전문 취업(E-9) 비자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다. 석유화학, 제철을 비롯해 플랜트 건설업은 내국인 일자리 보호, 기술 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2007년부터 외국 인력 고용이 금지됐다. 대한건설협회 측은 “외국 인력 도입 대상이 비숙련·단순노무직에 한정하면 내국인 일자리 침범이 없을 것”이라면서 “현재 플랜트 현장에선 중요 기술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돼 중앙통제시스템에 전송되기 때문에 기술 유출 문제도 없다”고 강조했다.
○‘파업 위협’에 눈치 보는 정부
외국 인력 도입 여부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열리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위원회가 플랜트 건설업을 E-9에 추가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실제 건설 현장에 인력을 투입하기까지는 최소 4개월 이상 걸린다. 외국인력정책위 결정이 늦어질 경우 연내 인력 조달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업계는 올해 하반기에 인력 부족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의 샤힌 프로젝트가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시설 공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난으로 공기가 늦춰질까 봐 해외에서 모듈을 만들어 국내로 들여오는 플랜트 현장도 있다”며 “해외 인력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오히려 국내 일거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노조는 오히려 일거리에 비해 인력이 넘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현재 플랜트건설노조 조합원은 약 9만7000명이다. 이들이 매달 내는 조합비를 따져봤을 때 약 52%(5만 명가량)는 만성 실업 상태라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플랜트건설노조 관계자는 “저임금 외국 인력 도입은 플랜트 건설 현장의 노동 조건을 급격히 악화시킬 것”이라며 “외국 인력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중대 재해 발생 가능성도 증폭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조속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노조의 파업 가능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노조 파업도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외국 인력 도입을 결정했는데 노조가 파업하면 되레 인력난을 가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용/곽용희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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