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미국이 북한에 쏘는 핵폭탄은 러시아 하늘을 지나야 한다

입력 2024-05-10 18:58   수정 2024-05-11 01:34

상상하는 것도 싫고, 읽는 것도 두려운 ‘핵전쟁 시나리오’가 공개됐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탐사보도 기자 애니 제이컵슨은 지난 3월 말 소설처럼 전개되는 가상 시나리오 <핵전쟁: 시나리오(Nuclear War: A Scenario)>를 미국 출판 시장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원고 상태일 때부터 영상화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고, 결국 ‘듄(Dune)’ 시리즈로 유명한 빌뇌브 감독에 의해 스크린으로 옮겨질 예정이라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핵전쟁: 시나리오>는 수십 명의 핵무기 관련 전문가와의 심층 인터뷰와 중앙정보국(CIA) 기밀 해제 문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생생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가 상당히 인상적인 논픽션이다.


북한에서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수도 워싱턴 DC를 완전히 파괴하기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분 단위로 설명한다. 북한의 첫 번째 미사일 발사부터 도시 문명의 전멸까지, 단 72분 동안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 펼쳐질 수 있는지 소개한다.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서방 소식통이 공개한 ‘한반도의 밤’ 위성사진에 깊은 모욕감을 느낀다. 사진에서 한반도 남쪽의 밤은 마치 낮처럼 밝게 빛났고, 북쪽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북한의 전력 부족을 조롱한 이 사진은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북한은 모욕감에 대한 복수로 그리고 자신들이 곧 공격받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에 이끌려 너무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미국을 향해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 50발을 사격하며 대응한다. 이 미사일은 북한의 무기 기지와 지휘 본부를 겨냥하고 있지만, 미사일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극을 통과해 러시아 상공을 비행해야만 한다.

미국 대통령은 자국 미사일의 러시아 상공 비행에 대한 승인을 요청해보지만, 비상 상황에서 러시아와 연락하기는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의 위성 조기경보 시스템인 툰드라는 미국의 사격 규모를 과장해서 전달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하 벙커에서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핵 공격을 명령한다.

북한에서 쏜 핵미사일이 결국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세계는 디스토피아적인 재앙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실제로 저자는 핵전쟁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북한으로 향하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러시아 상공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과 러시아의 조기 경보 시스템이 결함투성이라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미국 대통령은 조기 경보 시스템이 자국의 영토가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오면 단 몇 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 결정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책은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사실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면서 백악관에 있는 그 사람이 단 몇 분 안에 세상을 끝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올해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핵전쟁의 결과는 무시무시하지만,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버튼이 엉뚱한 사람의 손에 쥐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단순해 보이는 잘못된 의사소통, 예상치 못한 기술적 오작동, 그리고 이성을 잃은 지도자의 변덕이나 고집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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