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어느 별에서 온 나. 세상에 백만 송이 장미를 피워야 하는 사명이 있는데 그 장미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난다. 그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피우면 드디어 다시 나의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의 가사는 항상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애절함 속에서 다양한 영감도 준다.
사람과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준 숙제이고 사명이다. 인간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애증, 빗나간 사랑, 질투 같은 어두운 모습도 동시에 지닌 살아있는 존재다.
지난 수천년간 인간이 예술이라는 행위를 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감정은 사랑일 것이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 그중에도 수많은 장애물 탓에 더욱더 격정적이고 그 끝이 가슴을 메이게 하는 비극적 사랑이야말로 수많은 예술의 원천일 것이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곡에 케네스 맥밀런이 안무한 발레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하던 때였다. 영상자료를 보며 안무와 연출을 체크하던 중 중세 시대를 잘 그린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유명한 안무와 의상 그리고 무대여서 그러려니 하던 찰나 중세의 배경에서 문득 올리비아 허시가 줄리엣 역을 맡았던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를 다시 본 뒤 내친김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20세기의 미국 베로나비치로 옮겨 현대화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주연한 작품까지 다시 봤다.
발레 공연을 준비한다면서 악보는 다 덮어두고 이렇게 영화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고 나니 디캐프리오와 데인즈가 연기한 죽음이 너무나도 허망하고 찢어지게 슬프게 다가왔다.
20여 년 전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에서 콩쿠르를 마치고 베로나로 여행을 갔다. 실존하지는 않았으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나눈 것으로 그려졌고, 가상의 줄리엣 집마저 있는 도시가 베로나다. 베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은 슬픔을 간직한 채 하늘로 떠났다. 하지만 현대의 베로나는 그 연인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슬픔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이 싹트게 하는 도시였다.
결론적으로 그 둘의 희생으로 분명 몬터규 가문과 캐플렛 가문도 화해했을 것이고, 현실의 사람들도 사랑이 가져다주는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 베로나 어느 광장에 앉아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20년 전의 내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지금보다 젊었던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분주하게 다니는 시민들? 아름답게 키스하는 연인들? 그 젊은 연인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손 잡고 있는 노부부? 그 노부부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던 것일까?
영화 속 캐플렛 가문의 무도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났을 때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장미가 피고 지듯 젊음도 시드는 것’ 노래가 복선이 되어 그들의 장미는 피고 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같은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피워 작품 속 베로나 사람들에게 화해와 평화를 선사하고, 현실의 베로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설렘과 희망을 주며 그들의 별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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